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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КОРЕЙСКИЕ НАРОДНЫЕ ВЕСТИ 겨레일보 2017. 10.02(화) NO.4017
■ 겨레일보 특별기획-러시아 한국어교육의 실태와 발젖방향 ▶4부/ 한국어 교육의 젖성기(2)
▲ 카잖연방대학교 젖경. 1804년 러시아 황젯의 명령으로 카잖 젯국 대학교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고 소비에트 연방이 들어선 후
레닌 카잖국립대학교로 변경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해체후 카잖 연방대학교로 개명하였다. (오른족 사진) 카잖 연방대학의 후원잒
중 한 명인 19세기 젒명한 카잒흐스탄 계몽주의잒 '잨기르 한'의 기념비. 아랍어, 페르시아어 및 투르크어로 된 6개의 귀중한 고대
원고를 대학 도서관에 기증하는 것은 물론 동양학부 도서관의 기금을 확대하여 동양학잒를 양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겨레일보=박종권기자 www.koreans.ru> -1845)은 유럽 교육을 받았으며 러시아어, 경제 전공이 개설되었다.
러시아에서 최초의 사화주의 혁명을 일으 페르시아어, 아랍어 및 일부 독일어 등 8 카잔연방대의 한국학 연구의 발전의 기
킨 레닌은 왜 카잔대학교에 들어갔을까? 개국어에 능했다. 그는 자주 카잔대학을 초는 한국교육부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또 왜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 대문호 톨스 방문했으며 아랍어, 페르시아어 및 투르크 후원하에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
토이도 카잔대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했을 어로 된 6개의 귀중한 고대 원고를 대학 었다. 연구는 한국의 역사, 문화, 문학
까? 이들은 카잔대학교에서 도대체 무엇 도서관에 기증하는 것은 물론 동양 학부 경제, 사회 전분야에 걸쳐 있다.
을 배웠을까? 도서관의 기금을 확대하여 러시아의 동양 한편 대학을 비롯한 특목고를 포함 전
이에 대해 카잔시의 지정학적인 위치와 학자를 양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체 한국어 학습학생수는 2015년 1백명
최근 대학 입구에 설치된 19세기 저명한 카잔연방대는 결국 서양만이 아닌 동양학 에서 현재 무려 5배 이상 증가한 5백15
계몽주의자 '장기르 한'의 기념비(위 사 의 보고로서 당시에는 인정되고 있었다는 명이 수학하고 있어 거의 폭발적 수준이
진)에서 하나의 답을 얻을 수 있다. 카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레닌이나 톨스토이가 라고 할 수 있다.
시내에는 서울처럼 중간에 볼가강이 가로 충분히 수학을 하고 혁명을 할만한 또 세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카잔에도 한류
지르고 있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카잔에 계적 대문호로 성장할만큼 배울만한 것이 바람에 한국어 한국문화에 대한 일반 팬
사는 사람들은 유럽과 아시아로 나누어진 있었던 것이다. 들도 급증해 수천명에 달하고 있는 상황
다고 말하고 있다. 예전에는 카잔은 유럽 따라서 러일전쟁이 발발한 1904년 한 이다. 올해 5월 열린 한국문화경연대회
과 아시아를 잇는 길목. 인 유학생들에 의해 <러한소사전>이 카잔 에 러시아인들이 4백석 좌석에 5백여명
카잔은 유럽으로만 창을 연 페테르부르그 에서 발간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관람하는 등 한류열기는 식을 줄을
도 아니고 내륙에만 있는 모스크바도 아니 바로 이러한 토대위에 카잔에 최근 한국 모르고 진행되고 있다.
었다. 더욱이 아주먼 극동도 아닌 유럽과 어와 한국학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현재 카잔연방대 고영철 교수가 한국학
아시아가 만나는 당시는 동서양의 중심으 카잔연방대에 2003년 한국어강좌가 처음 연구소장으로 한국학 발전을 위해 힘을
로 인식되었다. 개설된 이후 국제교류재단에서 객원교수가 쏟고 있다. ***
대학에 설치된 기념비의 장기르 한(1803 파견되었으며 그리고 한국어를 비롯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