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0 - 2023서울고 기념문집fox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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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나누려한다. 하지만, 큰딸은 빠진 앞니 얘기에 정신이 없고 둘째는 아빠가 집
에 돌아오는 시간에만 관심이 있었다. 지리산 정상에 오른 걸 자랑하고 싶은 양
군은 천왕봉의 전경을 집요하게 보여주려 하지만 열 살이 채 안된 아이들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비운선생도 영국에 있는 딸
에게 영상통화를 시도한다. 선
생은 천왕봉을 처음 오른 감격
에 겨워서 딸이 있는 곳의 시
간이 밤 12시가 지난 것도 모
른 채 반응 없는 전화기만 쳐
다본다. 상남자 성준형님은 정
상 인증샷도 찍으려하지 않는
다. 똑 같은 고생을 겪고 정상
에 올랐지만 생각과 행동이 이
렇게 다르다. 정상에서 智異山
의 뜻을 다시 새긴다.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내려
가는 하산 길은 곡소리가 절
로 나는 인정사정없는 내리막
길이다. 상남자형님, 비운선생,
저와 양군 모두 도가니를 붙들
고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나서
야 지리산을 가까스로 떠났다. 천왕봉을 정복함으로써 비운선생은 비와의 오랜
악연을 끊었고 양태식 군도 지리산 첫 경험을 무사히 마쳤다.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면 세상이 지혜로워질까요? 그럴 것 같다. 아홉 번째
찾은 지리산에서 조금 더 지혜로워졌기를 혼자 슬며시 바래본다. 4인의 등반대
가 얻은 지혜가 여러분께 전해지길 역시 바래본다.
180 _ 서울고 35회 졸업 40주년 기념 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