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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의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고려초기에 해당하는 10세기 말부터 고려 말기인 14세기까지에 해 105
당하는데, 확인된 유구는 건물터, 집자리 등의 주거 유구와 분묘유적이 많고 생산유적은 3곳에 불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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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주거 유구는 누읍동 유적 1기, 지곶동 건물지 2기 및 집자리 3기, 청학동 유적 건물지 3기 / 유적
58)
57)
및 집자리 유적 1기, 궐동·두곡동 유적의 집자리 8기, 내삼미동 유적의 수혈유구, 주거지, 건물
59)
지 관련 유구 등이 파악되었다. · 유물
특히 지곶동 유적은 고려시대 2기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는데, 건물지는 4지점의 구릉 남서사면 중
앙부 해발 55~56m에 북서-남동 방향으로 10m가량 이격하여 나란히 위치해 있다. 건물지의 남서쪽
일대는 지형의 영향으로 대부분 유실된 상태이다. 건물지는 등고선과 나란한 북서-남동 방향으로 설
치된 석렬을 기준으로 북동쪽 공간과 남서쪽 공간으로 구분된다. 석렬은 잔존하는 양상으로 보아 할
석(割石)을 사용하여 1단 이상 쌓아올렸으며, 내 외측면을 맞춰 바른층 쌓기로 축조하였다. 석렬을 기
준으로 북동쪽은 너비 160~200㎝ 가량의 공간을 마련한 뒤 내부에 할석과 점토를 채워 대지를 형성
하였으며, 남서쪽에는 구들시설을 설치하였다. 구들시설은 대부분 유실되어 불완전하지만, 할석과
점토를 사용하여 조성하였다. 고래열이 1~3열 잔존하며 동쪽으로 배연부가 위치한다. 구들이 설치
된 중심공간의 앞 뒤 또는 양 측면으로 난방이 이루어지지 않는 부수적인 공간이 형성되어 있어 창고
등의 부속공간으로 활용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건물지에서는 도기류·자기류·기와류 미상의 철
제품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1과, 1-1지점에서 출토된 해무리굽 완은 내저원각의 형태인 한국
식(내저원각) 해무리굽 완으로 11~12세기로 편년되었다. 60)
그림 1. 지곶동 고려시대 1, 2호 건물지 전경과 1호 건물지
55) 中央文化財硏究院, 2008, 『烏山 樓邑洞遺蹟 : 烏山樓邑地區 住宅建設事業敷地內 발굴조사보고서』 .
56) 서해문화재연구원, 2017, 『오산 지곶동 유적 : 오산 지곶동 아파트 신축부지 내 유적 문화재 표본·시굴·발굴조사보고서』.
57) 겨레문화유산연구원, 2013, 『오산 청학동 유적 : 오산 세교 2지구 택지개발지구 내 6~9지점 시 ·발굴조사 보고서』.
58) 기호문화재연구원, 2013, 『烏山 塔洞·斗谷洞 遺蹟 : 오산 세교2 택지개발사업지구 내 유적(3구역) 발굴조사보고서』 .
59) 서해문화재연구원, 2015, 『오산 내삼미동 유적 : 경기도 오산시 내삼미동 275-4번지 내 문화재 시·발굴조사 보고서』.
60) 서해문화재연구원, 2017, 『오산 지곶동 유적 : 오산 지곶동 아파트 신축부지 내 유적 문화재 표본·시굴·발굴조사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