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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사람의 힘이 모아진 결과이다. 화성의 축조는 정조를 비롯한 중앙의 대소 신료, 건설 현장의
감독과 장인을 포함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려 일했던 모든 사람들의 힘이 모아진 결과였다.
공역을 준비하고 실행하기까지 임시기구인 성역소가 만들어졌다. 최고 책임자인 총리대신에는 당
시 중추부사로 있던 채제공(蔡濟恭, 1720~1799), 실제 공사를 총괄하는 책임자인 감동당상에는 화
성유수 조심태(趙心泰)가 임명되었다. 조심태는 이미 수원 신읍을 조성하는 일로 신도시 건설을 총괄
하였던 공역의 전문가였다. 현장의 모든 일을 주관하는 도청에는 이유경(李儒敬, 1747~?)이 임명되
었다. 이유경 역시 도형 그리기에 능하여 화성과 화성행궁 건설 과정에서 건축 조감도를 그려 정조의
이해를 도왔다.
여기에 건축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 기술자들이 소집되었다. 화성 축성 공사는 전
국에서 모두 22개 직종에 1,840명의 장인들이 투입되었다. 직종은 석수(石手)·목수(木手)·니장(泥
匠, 미장이)·와벽장(瓦甓匠, 벽돌 굽는 장인)·야장(冶匠, 대장장이)·개장(蓋匠, 기와 덮는 장인)·
거장(車匠, 수레 만드는 장인)·화공(畵工)·가칠장(假漆匠, 단청의 바탕칠을 하는 장인)·대인거
장(大引鋸匠, 큰 톱을 당기는 톱장이)·소인거장(小引鋸匠)·기거장(歧鉅匠, 톱장이의 일종인데 어
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다)·걸거장(乬鉅匠, 톱장이의 일종)·조각장(彫刻匠)·마조장(磨造匠, 맷돌
만드는 장인)·선장(船匠, 배 만드는 장인, 길게 휜 추녀목 가공)·목혜장(木鞋匠, 나막신 만드는 장
인)·안자장(鞍子匠, 말 안장을 만드는 장인)·병풍장(屛風匠)·박배장(朴排匠, 문짝의 고리나 돌쩌
귀를 만드는 장인)·부계장(浮械匠, 집 주변에 가설물을 만드는 장인)·회장(灰匠, 석회 굽는 장인)이
었다. 장인들은 대부분 서울 출신이었고, 화성과 개성 인근 지역, 특별한 기술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경상도와 함경도 등에서도 동원되었다. 이외에도 기록에 남아있지 않는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야말로
화성 건설의 힘이었다.
3) 개혁신도시 화성 건설
18세기 사람들이 꿈꾸는 도시는 사방으로 통하는 도로가 잘 닦여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신축 건물
이 들어서 번듯한 외관이 갖추어져 있어 도시 기반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곳이었다. 여기에 농업과
상업 등의 자족적인 발전이 가능한 토대까지 마련되는 곳, 정조는 바로 이런 꿈의 도시를 수원에 만
들고자 한 것이다.
아버지의 무덤을 이장하고 새로운 신읍을 조성하면서 꿈의 도시는 점점 구체화되었다. 신읍이 조
성된 팔달산 아래에는 화성행궁과 민가가 빼곡히 들어섰고, 행궁과 신읍을 감싸는 아름답고 견고한
화성 성곽까지 완공됨에 따라 도시의 모습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정조가 꿈꾸던 화성 신도시가 되
오산시사
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도시 기반시설이 마련되어야만 했다.
첫째, 화성 신도시로 집중하는 새로운 교통로가 건설되었다. 화성 신도시는 당시까지는 볼 수 없었
제
2 던 다른 개념의 경제 도시였다. 도시의 발전은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가능한 것
권
으로 이러한 도시 형성에 가장 중요한 바탕은 사방으로 통하는 길이 우선적으로 뚫려야 했다.
수원은 한양에서 삼남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양에서 수원을 다녀가는 정조의 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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