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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는 한강과 몇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 길이었다. 현륭원 조성 이후 매년 이어진 정조의 원행길은 157
한강[동작나루]을 건너 남태령을 넘어 과천행궁에서 하룻밤을 머무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인 역사
덕원을 지나 지지대 고개를 넘어 수원부로 들어가던 원행로는 정조 18년(1794)까지 계속되었다. / 유적
이 길을 대신하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 것은 이듬해에 수원에서 치러진 을묘원행 때문이었다. 과
천을 지나는 남태령길은 지금도 눈이 오면 자동차들이 서행하는 고갯길로 당시 말을 타고 고개를 넘 · 유물
어가는 정조의 원행 길조차 쉽지 않았다. 하물며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남태령을 넘어 수원을 다
녀올 수 없었을 것이다. 정조는 어머니의 행차에 대비하여 과천길 대신 시흥과 안양을 거쳐 수원을
다녀오는 길을 새롭게 닦기로 결정하였다.
시흥을 지나는 새로운 길이 뚫린 지역은 여러 가지 변화를 겪게 되었다. 과천 대신 정조 일행이 하
룻밤을 묵어야 하는 시흥과 이튿날 점심 수라를 들며 쉬어야 하는 안양에는 행궁이 마련되었다. 당시
안양천을 건너기 위해 세워진 만안교(萬安橋)는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후 역대 국왕들은
이때 새롭게 만들어진 시흥길을 이용하여 수원 능행을 다녀왔다. 훗날 수원으로 가는 경부선 철도와
1번 국도는 이 길을 따라 새롭게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주요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그림 9. 정조의 능행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