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오산문화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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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이야기












































           사진3. 오산 독산성 신라 성벽 외측(2019년 중부고고학연구소·한신대학교박물관 발굴조사)





           집터, 배수시설, 통행로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설들                   사에서 백제 토기와 기와가 출토되었
           은 조선시대 후기에 독산성이 군사적 요충지로서 성벽이 축조                      으므로 독산성을 백제의 산성으로 볼
           되고 많은 수의 군인과 장교들이 주둔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당시 한양을 방어하던 군부대의 시설이었음을 말해준다.                          반면 위에 언급한 조사에서 신라 유
           그런데 독산성이 언제부터 존재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물도 확인되었다. 또한 2017년 발굴조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                    사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구덩이가 조사
           면 ‘백제 독산성주(百濟 禿山城主)’라는 표현이 등장하므로 현                    되었고, 조사 중 출토된 유물 가운데

           재의 오산 독산성이 당시 백제의 독산성이었는가 하는 문제가                      삼국시대 신라의 굽다리접시(단각고배)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한신대학교박물관에서 1999년 실시한                      파편이 확인되었다. 때문에 신라가 백
           독산성 지표조사에서 백제 유물이 채집되었고, 2000년(기전                     제지역을 점령한 이후 백제의 산성을
           문화재연구원)과 2016년(고려문화재연구원)에 진행된 시굴조                     그대로 활용하였거나, 새롭게 신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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