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오산문화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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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VOL. 67 osan culture
워지고 78년 후인 1676년에 중수되었고 또 78년후인 1753년 고 옛 모습 그대로인 듯했다. 조선 정
(당시 사양재 64세)에 중수되어 78년마다 중수하게 된 역사가 조 임금도 서문으로 방문하였다하고
기이’하다는 것과 ‘노은 김경유가 곳집과 비들기집을 헐어 없애 정상의 세마대는 금방이라도 권율 장
고 그 재목으로 중수 방책을 내서 몇 개월 만에 새로 중수’하 군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였으며 월사 이정귀의 『월사집』 권 37에 독산성의 「진남루기鎭 성 둘레를 돌아보니 오롯이 솟아 동서
南樓記」가 있음을 밝혔다. 해서 자료를 준비하고 탐방을 떠나 남북 사방이 시원하게 잘 보이는 높은
기로 했다. 곳이어서 예부터 삼남지방을 오고 가
이 문집 내용들은 오산시에서 독산성 관련 문화 컨텐츠로 활 고 벌판의 사람이나 군대 움직임을 잘
용되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번 탐방은 할아버지의 체취 관측 할 수 있는 군사적 천연 요새일
를 느끼면서 역사와 고적, 사연을 되새기는 남달리 특별한 탐 만 하였다.
방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할아버지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 월사 이정귀는 ‘성안에 거주하는 백성
고 계신듯하여 신도 나고 기분이 상기되었다. 할아버지가 안 이 2백 호(戶)를 넘었으며, 사찰과 관
내 책을 만드신 것을 미리 공부하고 가는 것이기에 특별한 환 청도 도합 백여 곳’이 있었다하고 또 변
희와 감정을 느끼게 한다. 무가 재부임하면서 ‘성의 남쪽 모퉁이
급한 마음에 세마대 전철역에서 택시를 타고 단숨에 보적사 깎아 지른 벼랑, 깊은 골짜기 위에 초
(독산성) 입구 주차장까지 가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인 루(譙樓)를 세워 나그네들이 모이는 곳
증샷을 놓치지 않았다. 으로 삼았는데, 제법 넓고 전망이 틔
오산시와 시민들의 정성으로 잘 복원하여 보적사, 나무들과 어 좋았다. 진남루(鎭南樓)라 명명’하
노송들, 건축물과 성곽, 성가퀴가 잘 어울어졌고 오산문화원 고 월사에게 기문을 적어 달라해서 써
에서는 조만간 유네스코에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준 해가 1603년이었다.
산 정상에 성이 있어 주위는 모두 급격한 낭떨어지 형상이었 대체 남쪽에 경관이 좋은 위치에 있었
다는 진남루각과 왼쪽에 관아가 세월
에 사라져 사양재가 ‘78년마다 중수되
어 몇억년을 누릴 것’이라는 예상은 어
긋나서 복원의 기대가 안되는 것인가?
인걸도 관아 건물도 없는 속절없는 역
사를 느끼며 남문 주위를 씁쓸하게 서
성대며 이곳을 다녀간 할아버지와 많
은 사람들의 영령과 이별을 해야겠다.
다음에 독산성의 복원된 다른 모습을
누각이 있던 남문과 주위 경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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