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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헌병경찰 통치기(1910~1919년)의 오산교육
1911년 8월 23일에 칙령 제229호로 공포된 제1차 「조선교육령」에 따르면, 조선총독부는 한국인에
게 일본어를 습득시키고, 되도록 적은 경비로 초보적인 실업교육에 치중하여 충성된 일본인을 만드
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제2조 ‘교육은 『교육에 관한 칙어』의 취지에 기초하여 충량한 국민을 기르
는 본의로 한다.’처럼 한국인에게는 보통의 지식과 기능을 가르치며, 일본국민이 되기 위한 일본어교
육의 실시를 가장 중요한 교육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일제는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보통학교
교육에 주력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오산에도 교육기관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 신명학교 설립
신명학교(神明學校)는 1911년 당시 수원군 성호면 오산리에 최초로 설립된 사립학교이다. 오산의
청소년들을 모아 순수한 한국인 선생으로 하여금 근대교육을 실시하였다. 한국 민족정신을 함양시키
는 데 교육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설립 2년만에 일제의 민족정신 말살교육정책으로 인하여 폐쇄되고
말았다.
2) 오산공립보통학교 설립
신명학교가 폐쇄되자 이를 인수하여 1913년 4월 1일 오산공립보통학교가 「조선교육령」에 의해 개
교하였다. 4월 29일 초대 교장으로 무나카다 겐쥬로(棟形源十郞)가 부임했다. 교장인 무나카다는 일
제의 식민지교육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일본화 교육에 힘썼다. 태촌(台村)과 동북면에서 국어(일어)
강습회를 열었으며, 1913년 9월 16일 오산청년 국어(일어)야학회를 열어 일제말살교육정책에 공헌했
다. 이후, 오산공립보통학교는 1938년 성호심상소학교로, 1941년 성호국민학교로 개칭되었다.
3. 문화통치기(1919~1931년)의 오산교육
1) 오산 공립농업실수학교 설치
실업보습학교 농업교육은 한·일 합방 이전인 1910년 학부령에 의하여 실업보습학교 규정을 공포
하여, 실업에 종사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였다. 수업연한 2개년 이내로 하되 토지의
상황, 직업의 종류, 또는 계절의 번한(繁閑)에 따라 시간이나 계절을 적절하게 선정하여 수업기간도
오산시사
적절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공립보통학교에 부설하도록 하되, 될 수 있으면 권업기관 또는
금융기관 소재지에 설치하여 기관의 기술원과 보통학교 교원이 가르치도록 하였다. 이를 위한 농업
제 보습학교는 농업실수학교, 농민학교, 농업전수학교, 실습학교, 중견농민학교, 농업보습학교, 농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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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農士學院), 농도학원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었다. 직업학교로서 간이 농업학교가 설치된 이면에
는 1930년대 세계적인 경제공황과 일본의 농업공황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직업교육을 강
258 화하여, 일본의 식량보급처로 한반도의 농산물을 풍족하게 생산하기 위한 교육정책을 펼쳤다. 이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