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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산사립학교 출범
세계적인 경제공황과 일제의 대륙 침공을 위한 군수산업의 확대로 인해, 한국의 농촌은 황폐화되
었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지방유지들은 사설강습회와
서당을 개설하여 대중교육에 힘썼다. 그러나 일제는 1927년부터 표면적으로는 군수에게 감독하게 하
였으나, 실제로는 경찰서장과의 협조를 통해, 학교개설 동기, 강사선발, 강습 실제 등 전반적인 측면
에서 엄격하게 단속하였다. 특히, 교수방법과 학생지도와 같은 교육과정 내용구성은 인접한 공립보
통학교장의 지도와 허락이 필요하였다. 그 결과, 일제가 건전하다고 판단한 사설강습회를 점차 사립
학교로 승격시키거나 간이학교로 개편하였으며, 그 외의 것들은 정리하여 폐지하였다. 부와 군에도
도시학(道視學)이 배치되면서, 일제는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학교뿐만 아니라 사설강습회까지 통
제하였으며, 이들을 일본화 도구로써 활용하고자 하였다. 이에 뜻 있는 오산의 유지들과 독립운동가
들이 애국운동의 일환으로 사설학교 혹은 학원을 설립하였다.
(1) 대성학원
1923년 금곡리의 유지였던 오산청년동맹위원장인 공석정이 대성학교를 궐리(오산리로 이전)에 설
립하였다.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한 청소년들을 모아 항일운동 정신을 비롯한 한국사, 수학, 사회(법
률), 이념사상 등을 교육하였다. 교사진으로 공석재, 변기재, 이원식, 장봉운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대성학원의 교가는 ‘하나 둘 한마음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셋 넷 세계 동무 가난한 동무, 다섯 여섯,
간다 단결해 보자, 일곱 여덟 아홉 열 겁낼 것 없다.’이다. 민족사관 이념교육을 통해 민족혼을 가진
청년으로 기를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고자 노력하였다. 대성학원은 일제의 감시하에 위축되던 중 방
화로 문을 닫았다.
(2) 삼미의숙
현재 매홀초등학교 삼미분교장의 시초인 삼미의숙은 1923년 4월 4일에 지역 유지였던 윤학영에
의해 설립되었다. 일제의 사설학원 탄압으로 인하여 학교 이름을 의숙(義塾)이라 고쳐 지었으며, 개
교 당시 교사 2명과 학생 수는 85명이었다. 이후, 1945년 7월 15일 삼미공립국민학교로 인가되어, 초
대 김시환 교장이 취임하였다. 삼미의숙은 광복을 맞을 때까지 존속되었으며, 1948년 9월 24일 국가
에 헌납되어, 삼미국민학교로 다시 개교하였다. 1986년 삼미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개원되었으며,
오산시사 1997년 3월 1일 삼미초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98년 9월 1일 매홀초등학교 삼미분교장으로
편입되어 운영되고 있다.
제
4 (3) 광성학원
권
1925년 4월 28일에 당시 수원군 성호면 세교리에 홍종각 등에 의해 설립된 사립학원이다. 개교 당
260 시, 학원장은 문병상이었으며, 교사 1동(8칸)과 학생 36명으로 구성되었다. 일제 강점하에 설립된 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