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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돼지콜레라가 경기도 일원에 창궐하는 관계로 인해 제10회 오산독산성문화제는 취소되었으며, 내 503
년에 이어질 예정이다. · 예술 문화
제6절 양산동 산신제 · 체육 / 교육
46)
2006년 『오산의 마을신앙』에는 양산동(陽山洞) 산신제 정보가 담겨 있다. 그에 따르면, 양산동에 / 종교
서는 매년 한 번 마을의 안녕과 개인의 소원을 빌기 위한 마을 제사를 마을 뒷산 꼭대기(한신대 뒷편)
에서 지낸다. 제사 대상의 신격은 산신령이고, 마을에서는 ‘산신제’라고 부른다. 산신제를 위한 별도
당집은 없고, 다른 당제 사례와 달리, 고정된 신목이나 돌무더기나 탑 같은 제단도 없다.
산신제 시기는 매년 음력 9월 30일이다. 다만, 그달에 초상이 있으면 부정이 있다고 하여 음력 10
월 1일로 잡는다. 산신제를 주도적인 주민들은 안씨, 문씨, 이씨, 나씨 등이다. 그 이유는 양산동에 안
씨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문씨, 이씨, 나씨 순서로 씨족을 이루어, 산신제 같은 마을 행사를 주도
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제관 또는 당주는 마을 주민 중 생기복덕에 따라 부정이 없는 사람을 가려내 선출한다. 남녀 모두
제관 또는 당주가 될 수 있고, 여자는 폐경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선출된 당주는 제사 공간을 청소하
고, 산신제를 주관하고, 자기 집에서 마을 주민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맡는다.
산신제의 제수용품은 소, 떡, 조라술, 과일 등이다. 소는 두 마리를 잡아 왼쪽 부위의 네 부분(앞다
리, 뒷다리, 갈비살, 어깨살)만 제수로 사용한다. 머리는 제수로 사용하지 않는다. 남은 부위들은 당
주 집 마당에 두었다가 제사 후에 마을 사람에게 분배한다. 떡은 흰색 시루떡을 쓰고, 조라술은 엿기
름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알코올 성분이 없는 발효주이다. 모든 떡, 과일 등의 음식은 세 되 세 홉 석
자의 규칙에 따라 준비한다. 산신제에 필요한 비용으로는 각 호마다 10만 원씩 걷는다. 갹출한 비용
으로는 미리 봐 둔 소를 사는데, 제사 후 남는 돈은 다시 개인에게 돌려준다고 한다.
산신제와 관련해, 소를 두 마리 잡아 올린다는 것은 양산동 산신제의 특징이다. 다만, 도살 기관이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고 가죽을 돌려주지 않기 때문에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이익
이 아니라 제사를 위한 것이라고 하여 마을에서 묵인 하에 직접 도살했다고 한다.
양산동 산신제에서 금기는 두 가지 정도이다. 하나는 여자가 산에 올라가지 않는다는 금기이다. 다
른 하나는 제사가 끝나기 전까지 음식에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다는 금기이다.
양산동 산신제는 특정한 효험을 바라는 제사가 아니라 마을에 대대로 전해진 전통을 계승하는 성
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기독교인은 산신제에 참여하지 않고, 토착민이 아닌 경우에도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46) 김용국, 앞의 책, 2006, 78-81쪽(양산동). 양산동은 정조13년(1789)에 산성면 양산리로 불렸고, 1914년 4월 1일 오산이 수원군 성호면으
로 될 때 산성면에 속해 있었다. 1941년 10월 1일 오산면 양산리, 1960년 2월 1일 오산읍 양산리, 1989년 오산시 승격과 함께 세마동에
편입된다. 원래 양산봉리(洋傘峰里)라고 하여 마을 뒷산 봉우리 생김새가 양산을 펴 엎어 놓은 것처럼 생긴 데에서 유래된 이름이지
만, 양산에 가려진 북쪽 마을이라 음지로 양지(陽地)를 그리며 양산리(陽山里)로 불렸다고 한다. 양산골, 양산곡 등으로도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