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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 예술
제3장 유교 · 체육 / 교육
유교는 한학(漢學)과 관련이 있어 그 역사가 오래된 편이다. 삼국시대의 경우, 고구려에서는 1세기 / 종교
무렵 이후 한학의 발달 과정에서 소수림왕 2년(372)에 태학(太學)을 세워 귀족 자제들에게 유학을 교
육하고, 후기에 각 지방에 사립교육기관인 경당(扃堂)을 만들어 평민 자제들에게도 유학과 궁술을 가
르친다. 백제는 한학의 발달 과정에서 4세기 중엽인 근초고왕 때 『서기(書記)』를 편찬하고 일본에 유
학을 보급한다. 신라에서는 한학의 발달 과정에서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이두(吏讀)로 노래한 향가
(鄕歌) 문학, 원광(圓光)의 세속오계 등이 퍼진다.
남북국 시대에는 통일신라가 국학을 설치해 유교 경전들을 교과목으로 사용하고, 당나라에 김가기
나 최치원 등 많은 유학생들을 배출한다. 고려시대에는 광종 때 과거제도의 실시, 성종 때 최승로의
숭유정책 건의, 최충의 9재학당 설립 등을 통해 유학이 확대되고, 후기인 13세기 말부터 안향(安珦)
등에 의해 송학(宋學, 성리학) 서적이 유입된다. 성리학 연구가 확대되면서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일
종의 국교로 채택된다.
유교가 오산 지역에서 시작된 역사는 오래된 편이다. 1989년에 오산시로 승격되었지만, 이미 과거
2)
1)
에 ‘수원 궐리사’로 불렸던 궐리사(闕里祠)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도 궐리사가 있지만, 위상
이 다르다. 예를 들어, 논산 노성궐리사가 선비들이 사적으로 제사 모시는 사당이라면, 오산화성궐리
사는 조정의 지시로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오산화성궐리사는 조선 전기에 공서린(孔瑞
麟, 1483-1541)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자 조선 후기에 정조의 전교로 설립된다. 오산 궐리사는, 다
른 지역과 달리, 오산시 유교의 흐름이 향교나 서원이 아니라 공자를 모신 사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그리고 궐리사가 노나라의 곡부(曲阜)에 공자가 살던 마을(궐리, 산동성 곡
부현) 명칭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교의 흐름이 강했다는 특징도 보여준다. 그 외에 오산시에는
1991년에 고려 전기의 문신인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 984~1068)을 기리는 문헌서원이 건립되고
있고, 유도회 오산지부가 있기도 하다.
유교가 수백 년 동안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중앙의 성균관, 지방의 향교, 그리고 개별 서원 등
* 고병철│한국학 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
1) 정조실록 38권(정조17년 9월 2일 임진 2번 째 기사).
2) 궐리사는 논산(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길 35번지(교촌리 301))나 진주(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