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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오산문헌서원 영정각
문헌서원에서 중요한 건물은 영정각이다. 영정각은 1991년에 정면 3칸과 측면 2칸의 콘트리트 구
조에 청기와를 얹어 건립된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영정각이 중요한 이유는 최충과 함께 장자인 문화
공(文和公) 최유선(崔惟善, 미상-1075), 차자인 섭상서령공 최유길(崔惟吉, 생몰년 미상)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헌서원의 영정각에 영정이 봉안된 최충(崔沖)은 최온(崔溫)의 아들로 본관이 해주(海州)이다. 자
는 호연(浩然), 호는 성재(惺齋)·월포(月圃)·방회재(放晦齋)이다. 목종8년(1005) 문과에 장원 급제
해 우습유(右拾遺)에 오른 후 여러 관직을 거친다. 1053년 문하시중(門下侍中), 1055년 중서령(中書
令)을 거쳐 벼슬에서 물러난다. 이후 송악산 아래 자하동(紫霞洞)에 공부 내용에 따라 9개 방을 둔 구
재학당(樂聖·大中·誠明·敬業·造道·率性·進德·大和·待聘齋)을 마련해 후진을 양성한다. 이
후 개경에 구재학당을 모방한 11개소 사학이 세워지면서 최충은 사학십이도(私學十二徒, 또는 12도
의 사학)의 하나인 문헌공도(文憲公徒)의 창시자가 된다. 사후에는 정종의 묘정을 거쳐 선종의 묘정
에 배향되고, 문헌서원에 제향된다.
최충의 큰 아들 최유선은 현종21년(1030) 과거에 급제해 한림원에 들어간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문
오산시사
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른 인물이다. 학문이 깊어 여러 차례 과거 시험관[知貢擧]을 역임하기도 한다.
사후에는 수태위 중서령(守太尉中書令)에 추증되고, 문종의 묘정에 배향된다. 시호는 문화(文和)이
제 다. 최충의 둘째 아들 최유길은 문종27년(1073) 호부시랑(戶部侍郎)이 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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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공 섭상서령(守司空攝尙書令)에 오른 인물이다.
본래 문헌서원은 명종5년(1550) 황해도 해주 신광사(神光寺) 계곡에 건립된 서원이다. 이와 관련
516 해, 중종14년(1519) 1월, 황해도 관찰사 김정국(金正國)이 해주의 문묘에 문헌공 최충의 사우 건립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