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1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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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대한국이 탐이나 형에게 나라를 바꾸자고 하지 않는다. ‘시루말’에서 인간세상을 놓고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지 않는 것과 백제의 건국신화와 관련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시루말’이 건
국신화의 모습을 갖추기 이전의 원시신화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그러한 설정이 가능하다는 주
장이다. 비류와 온조의 백제 건국신화를 기록한 『삼국사기』를 보면 비류와 온조가 처음에는 대
결없이 두 나라를 세웠으나 이후에는 비류가 스스로 온조에게 나라를 넘긴다는 내용과 그 과정
이 ‘시루말’과 연결돼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이다. ‘창세가’ ‘천지왕본풀이’나 그 외의 서사무가에서
도 인간세상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중요한 신화소로 포함돼 있지만 인세차지 경쟁이 전혀 나
타나지 않는 ‘시루말’은 분명 우리나라 창세신화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창세가’를 살펴보면
창조주인 미륵과 석가가 인간세상을 놓고 경쟁하는데 내용은 “인간세상이 태평할 때 석가가 나
타나 미륵에게 인간세상을 내놓으라 했다. 미륵과 석가는 인간세상을 차지하기 위한 내기를 하
게 됐다. 석가는 잠을 자면서 무릎에 꽃을 피우는 내기를 제안하고, 미륵이 잠든 사이에 미륵이
피운 꽃을 가져다 자기 무릎에 꽂아 승리한다. 미륵은 석가에게 인간세상을 내어주고 사라진다.
석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인간 세상에는 부정한 것들이 생겨나게 됐다.” ‘창세가’에서는 미륵이
천지개벽을 하고 뒤에 나타난 석가에게 인간세상을 빼앗기는 형태다. 안 해도 될 내기를 하고,
그마저도 속임수에 당한다. ‘천지왕본풀이’도 비슷하다. 천지왕은 형인 대별왕에게 이승을, 아
우인 소별왕에게 저승을 차지하라고 하나 아우는 수수께끼와 꽃 가꾸기 등의 내기를 하여 이승,
즉 인간세상을 차지한다. 여기에서도 아우는 형을 속여 인간세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간세상은 말세가 된다. 이처럼 인세차지 경쟁의 신화소가 의미하는 것은 인간세상, 현세를 중
시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 창세신화별 관계
① 성신 숭앙
창세신화 ‘시루말’ ‘창세가’ ‘천지왕본풀이’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이 일월조정이다. 태초
에는 해와 달이 두 개씩이라 인간세상에서 살기가 어려워 해와 달 하나씩을 제거하거나 조정하
는 것이다. 해와 달과 함께 중시하는 것이 별이다. ‘시루말’을 보면 천신의 이름이 ‘천하궁 당칠
성’이다. 그런 연유로 ‘시루말’을 ‘칠성굿’이라 부르기도 하며 자손의 수명장수를 위해 ‘칠성님’에
게 빈다고 했다. ‘당칠성’의 칠성(七星)은 일곱 개의 별을 의미하며 별을 신성시하는 마음이 당칠
성이라는 이름에 들어 있다. 칠성은 본래 중국 민간신앙에서 인간의 생사, 수명을 관장하는 신
이다. 중국의 칠성신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칠성풀이’라는 무가가 생겼는데 충청도 남부권과
오산 12제차 중 ‘시루말’의 창세신화 고찰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