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9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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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첫째, 현실을 중시하는 기복신앙적 성격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창세신은 인간세상을 창조했지만 인간의 복리를 관장하는 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무속의
식이 국가 차원의 제의에서 가정 단위로 축소되면서 자연스럽게 창세신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
졌다는 것이다. 신에 대한 제의는 제의 특성상 국가 등이 주관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창세신
화의 중요한 신화소인 천지개벽이 ‘시루말’과 ‘창세가’ ‘천지왕본풀이’에서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학계의 주장을 근거로 살펴보았다.
② 인간창조와 시조 출생
인간창조와 시조 출생에 관한 신화소는 ‘시루말’ ‘창세가’ ‘천지왕본풀이’에 모두 나타나나 ‘창
세가’에서는 인간이 창조되는 형태로, ‘시루말’이나 ‘천지왕본풀이’에서는 시조가 출생하는 형태
로 나타난다. 먼저 ‘창세가’의 인간창조는 미륵이 금쟁반과 은쟁반을 들고 하늘에 축도해 금벌
레·은벌레 다섯 마리씩을 받는데 이 벌레들이 자라서 금벌레는 남자가 되고 은벌레는 여자가
되어 부부를 이뤄 자손이 번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벌레가 자라 사람으로 변했다는 점에서
진화론적 사고를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시루말’과 ‘천지왕본풀이’에서는 인간세상 통치자의 시
조가 출생되는 과정이 나타나 있다. 그 과정도 등장인물의 명칭만 다르지 ‘시루말’과 ‘천지왕본
풀이’가 비슷하다. 내용을 보면 ‘시루말’과 ‘천지왕본풀이’ 모두 하늘에서 남자 신(당칠성, 천지
왕)이 내려와 지상의 여인(매화부인, 총명부인)과 결연을 맺어 아들 형제(선문이·후문이, 대별
왕·소별왕)를 낳는다. 이 아들 형제가 하늘로 아버지를 찾아가 만나고 인간세상을 다스리라는
직책을 받는다. 여기서 볼 수 있는 특징은 ‘창세가’에서 만들어진 인간창조가 ‘시루말’ ‘천지왕본
풀이’에서는 결혼이라는 형태를 통한 부모의 존재와 시조의 출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부모
가 하늘신과 지상의 여인이라는 형태, 즉 천부지모(天父地母)형 신화가 형성되는 과정이라는 것
이다. 인간이 절대신에 의해 창조되는 과정을 거쳐 절대신인 부모의 결혼으로 시조가 출생하는
형태는 원시사회에서 고대국가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신화의 변천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단군이나 주몽이 등장하는 건국신화의 출생 과정과 유사하다. 이런 까닭에 ‘시루말’과
‘천지왕본풀이’를 건국신화의 전 단계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③ 일월조정(日月調整)
창세신화의 중요한 신화소 중 하나가 해와 달의 수를 조정한다는 것이다. 이 일월조정은 ‘시
루말’이나 ‘창세가’ ‘천지왕본풀이’에 모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해와 달의 수효를 조절한다는
것은 농경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태양의 수 조절은 더위와 가뭄을, 달의 수 조절
오산 12제차 중 ‘시루말’의 창세신화 고찰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