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7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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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별왕에게 이승을, 아우인 소별왕에게 저승을 차지하라고 했다. 그러나 아우는 수수께끼나 꽃
가꾸기 등의 내기를 하여 이기는 자가 이승을 차지하자는 제안을 하고, 속임수로 이승을 차지했
다. 그러나 이승에는 해와 달이 두 개씩 뜨고, 나무와 짐승이 말을 하고, 귀신과 인간의 구분이
없고, 인간의 불화·역적·도둑·간음 등이 들끓었다. 아우 소별왕이 형 대별왕에게 이승의 질
서를 바로잡아 달라고 간청하자 대별왕은 활과 살을 가지고 해와 달 하나씩을 쏘아 바다에 던져
하나씩만 남겼다. 또 짐승의 혀를 저리게 하여 나무와 짐승이 말을 못하게 하였으며, 무게를 달
아 그 경중으로 귀신과 인간을 나눴다. 그러나 인간의 질서는 바로잡지 못해 인간의 불화·역
적·도둑·간음 등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위 내용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천지왕본풀이’는 우주 기원에서 시작해 천지가 개벽하는 과정
을 담고 있다. 우주 기원과 관련된 신이 천지왕이므로 ‘천지왕본풀이’가 초감제에서 가장 먼저
불리는 것이다. 천지개벽이 된다고 바로 세상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늘과 땅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천지왕본풀이’의 내용은 개벽에서 질서의 세계로 나
아가는 단계를 나타난다. ‘천지왕본풀이’ 내용 중 ‘하늘에서는 청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흑이슬
이 솟아 만물을 만든다’는 것은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고, ‘태양이 없을 때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치니’라는 대목은 시간의 생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
다. 또한 ‘부자인 수명장자의 악행을 듣고 집을 불태웠다’는 내용은 수명장자가 나중에 이승과
저승을 다스리게 되는 대별왕과 소별왕보다 먼저 존재했다는 사실로 미뤄 인간세상의 신격화된
인물로 생각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명장자를 악인으로 그리고 악인을 징치한다는 내용과 이
승과 저승을 구별했다는 것은 윤리를 앞세우는 권선징악 메시지 전달과 함께 선과 악을 인식하
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창세신화’에 반드시 보이는 일월조정 신화도 있는데 특이한 것은 해
와 달이 두 개라 생기는 부작용이 ‘낮에는 더워 살 수 없고, 밤에는 추워 살 수 없었다’는 내용으
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쌍둥이 형제인 대별왕과 소별왕이 인간세상인 이승을 차지하기 위해 수
수께끼나 꽃가꾸기 등으로 내기(경쟁)를 하는 인세차지 경쟁도 ‘천지왕본풀이’가 ‘창세신화’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제주도의 ‘천지왕본풀이’는 오산의 ‘시루말’, 함흥의 ‘창세가’와 함께 우리
나라 ‘창세신화’의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오산 12제차 중 ‘시루말’의 창세신화 고찰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