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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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유적으로는 이 시기의 단조철기 생산유구가 확인된 양산동유적 이 대표적이
다. 독산성의 동북쪽 양산봉 아래에서 조사된 이 유적은 단조철기 생산시설, 배수로 외 기타유
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500×480cm크기의 규모로 방형에 가까운 구조로 수혈 부근에서 7개
의 기둥구멍이 노출되었다. 유구의 구조는 산란이 심해 잘 알 수 없으나, 할석 구조를 가지고 있
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 생산유구는 경기도에서 그 예가 드문 조사 예로서 독산성
내에서 수습되는 통일신라시대 유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곡병환두소도
(曲柄環頭小刀), 유공석제품(有孔石製品), 명문토기 등이 출토되어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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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양산동 신라유적 에서는 석렬과 수혈 등이 조사되었다. 가장동유적 에서는 석곽묘와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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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묘 등이 조사되었다. 그 외 지곶동유적 , 양산동유적 등 생활과 분묘와 관련된 유적들이 조
사되었으며, 그 외 유물산포지를 통해서도 이 시대에 해당하는 유적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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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유적으로는 지곶동 유물산포지 가 있는데, 독산성의 남쪽 아래 능선으로 금동 보
살입상 1점이 수습된 곳이다. 금동보살입상은 관음보살상으로, 크기는 19.5cm, 머리 크기
4.8cm, 어깨 폭 4.3cm이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는데, 당초문이 투각되어 있으며, 보관의
관대는 머리 뒤에서 리본형으로 결대되어 후면에 돌출되어 있다. 범의는 통견으로 하반부에 내
려 올수록 의습이 많이 겹쳐져 있고 수인은 오른손은 여원인을, 왼손을 시무외인을 맺고 있다.
주조된 시대는 대략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독산성내에서 출토된 청자류와 관련하여 성내, 혹은
현 남쪽 능선을 중심으로 고려시대 유구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외 고려시대 유적으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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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유적 , 세람교지 내 유적 , 화산동유적 , 가장동유적 , 지곶동유적 등 생활유적과 분
묘가 조사되었다.
22) 한신대학교박물관, 1998,『오산 양산지구 문화유적 시굴조사 약보고서』.
23) 한신대학교박물관, 2009,『오산 양산동 신라 유적』
24) 주3)의 보고서.
25) 기호문화재연구원, 2010,『오산 지곶동 유적』.
26) 한신대학교박물관, 2001,「오산 양산동 기와가마」,『경기 남부의 조선시대 유적』.
27) 주20)의 보고서
28) 이호관, 1965,「화성 지곶리출토 금동관음상」,『고고미술』59호.
29) 한국문화유산연구원, 2010,『오산 세교동유적』.
30) 중앙문화재연구원, 2006,『서부우회도로 화성시 구간내 유적포장가능지역 5지점 문화유적 추가발굴조사 약보고서』
31) 경기문화재연구원, 2010,『오산 화산동 유적』.
32) 주8)의 보고서.
33) 주13)의 보고서.
오산 독산성 일원 지표조사 보고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