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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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적으로 생산유적인 양산동유적 이 있다. 양산동유적은 독산성의 동북쪽 양산봉
아래에서 조사된 유적으로 조선시대 후기 기와가마 2기와 소규모의 숯가마가 확인되었다. 1호
가마가 950×200~600cm, 2호 가마가 910×190~650cm로 평요에 가까운 중간 규모의 조선
시대 기와가마이다. 이 유구 가까이에 위치한 용주사와 융·건능은 물론이고, 독산성과도 밀접
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5)
독산성 내에서는 조선시대 봉수와 보적사가 조사되었으며 독산성 북서쪽으로 조선시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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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제방의 기능을 한 만년제 가 위치한다. 화성 만년제는 수원의 만석거(萬石渠), 축만제(祝萬
堤)와 더불어 정조가 추진한 수리정책, 농업 진흥을 통한 번영과 생활안정, 현륭원의 경영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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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정 확보 등의 목적으로 축조된 수리시설의 하나이다. 이는 수원부 구읍치에 위치한 ‘방축
수(防築藪)’라 불리던 제언을 1795년(정조 19)에 ‘만년제(萬年堤)’라 개칭하였으며, 1798년(정조
22)에 현륭원(顯隆園) 주변의 농토에 안정적인 물 공급을 하기 위해 현륭원 동구에 신축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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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이다. 또한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오산 지곶동 유물산포지1·2·3·4·6·7 ,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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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유물산포지1·3·4 , 양산동 유물산포지1·2 등에서 백자와 기와 등 조선시대 유물이
다양하게 확인이 되고 있어 앞으로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관련된 유적들이 확인될 가능성이 높
다.
한편 이 밖에 현재는 화성시에 속하는 유적으로 수원 화성이 건설되기 전 수원부의 치지가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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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했던 수원 고읍성 이 있다. 성내의 면적은 약 25,000평, 서의 길이는 1.3km 내외로 추정되
며, 발굴조사결과 성내에는 관아터로 추정되는 건물지를 비롯하여 3개의 건물지와 8개의 할석
유구, 현륭원 재실 담장 기초석 등이 확인된다. 원래의 관아터는 후대에 건설된 현륭원 시설들
로 인해 멸실되어 현재는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성내에는 통일신라시대 문화층에서 조선시대
후기층까지 조사 되었는데, 기존에 수원 고읍성의 일부로 추정된 융·건능 북측의 성벽은 고읍
성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어 이의 성격규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수원 고읍성에서 바라보는 독산
34) 한신대학교박물관, 2001,『경기 남부의 조선시대 유적-오산 양산동 기와가마』.
35) 주20)의 보고서.
36) 화성시·경기문화재단, 2012,『만년제 2차 시·발굴조사』
37) 주43의 보고서.
38) 주43)의 보고서.
39) 주5)의 보고서.
40) 주5)의 보고서.
41) 주5)의 보고서.
42) 한신대학교박물관, 2000,『수원 고읍성』.
52 한신대학교 대학원 한국사학과 고고학실습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