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1 - 오산시사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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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서방굴(골짜기)                                                                                    249

                    당산에 있는 골짜기로 이름의 연유는 모른다고 한다.                                                                  생활환경


                  ■ 뒷자리고개(고개)                                                                                      /  지명유래

                    오산초등학교에서 서동으로 넘어가는 마을 뒤의 고개라 붙여진 이름이다.



                  ■ 뒤골(골짜기)

                    안산과 오산초등학교 사이의 골짜기로 마을 뒤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사당굴(골짜기)

                    옛 청해백사(이지란 사당)가 있던 골짜기를 말하며, 사당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가숫물(우물)


                    예전 가수리에서 가장 차고 물맛이 좋았던 우물로 현재 가수동 주공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중간에
                  있었던 우물이다. 가수동에는 예전에 지명이 말하듯 물이 좋은 마을이었으며 마을의 우물은 모두 세

                  군데 있었으며, 다른 우물은 별다른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 청해백사(사당)

                    이지란(李之蘭)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태조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은 여진인으로 조선으로 귀화하
                  였다. 태조가 조선을 개국하는데 크게 기여하여 공신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그의 후손(청해 이씨)이

                  가수동에 살아 청해백사의 사당이 있으며, 오산의 일부 지역에서 청해 이씨 시조의 묘가 내삼미동에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지란의 묘는 함경도 북청에 있다. 전국에 이지란
                  사당은 오산 가수동에 있던 청해백사 한 곳뿐이었다. 청해백사가 처음에는 오산초등학교의 서쪽 안
                  산에 있다가 소실되어 다시 앞마을 앞산으로 옮겨졌으며, 6·25전쟁 때 폭격으로 다시 이곳 청해백

                  사 자리로 이전했다가 현재는 택지개발로 훼철되었기에 아쉬움이 크다.





                  제2절    서동(西洞)



                    서촌이라 하여 오산의 가장 서쪽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으로 1동과 2동으로 나뉜다. 예전에는 초평

                  면의 면사무소가 있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으며 ‘여들’이라고도 불렸다. ‘여들’이란 외지에서 말할 때에
                  는 서동 전체를 지칭하기도 하고, 서 2동만을 지칭할 때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또한, 들판을 지칭
                  하는 명칭으로 ‘여들’이 사용되는데, 여유 있는 들판, 즉 ‘넓은 들판’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지칭의

                  범위는 서동의 앞 들판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초평들 전체를 말할 때에도 사용된다. 한편 서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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