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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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천烏山川(오산시 지경 내에 속한 오산천)
오산천은 용인시 구성면 동백리, 중리의 보개산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기흥
읍 신갈리 구흥역에 이르러 남쪽으로 꺽여 흘러 신갈저수지를 이룬다. 이 물이 계
속 남쪽으로 흘러 화성시 동탄의 서쪽을 거쳐 오산시의 오산동, 누읍동을 거쳐 계
속 남류하여 평택시 진위면과 서탄면의 경계를 이루고 진위천과 합류한다. 오산천
의 동쪽에는 넓은 충적퇴적에 의하여 생긴 넓은 들이 발달되어 곡창 지대를 이루었
는데 오늘날의 오산시 운암들로서 곡창지대를 이루었으나 지금은 택지로 개발되어
아파트 숲으로 변했다.
오산천은 오산의 젖줄이며 오산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오산천은 오산 발전의 상징
이며 오산의 대외적인 이미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갖는 대표성을 갖고 있다. 특
히 오늘날 오산천은 오산시의 중심을 관통하면서 시가지 형성과 미래의 명품도시로
서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오산천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어 왔는데, 현재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이름은
문헌에 나타난 것이다. <오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고문헌을 조사하여『2009 오산
시사』에 기록한 오산천의 명칭 변화를 알아본다.
●1481년 -성종(成宗)조에 노사신이 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용인현 산
천(山川)조 구흥천을 설명하면서 수원부 오산원천이란 이름이 나온다.
●1611년 -광해군(光海君) 3년에 발간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에도 위와 동일한 오산원천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1753년 ; 이중환(李重煥:1690~?)이 쓴 택리지(擇里志)에는 오산(鰲山)이란 지명
이 나오고 오산장(場)이 3일과 8일(당시엔 당연히 음력 사용)에 열린다는 기록이
나온다.
●1789년 -정조(正祖) 13년에 간행된 수원부읍지의 산천조에 오매(烏梅)천으로 기
록되어있다.
●1793년 -수원부읍지에서도 오매천으로 기록되어 있다.
●1800~1834년 -순조(純祖) 때에 발간된 여지도(輿地圖)에는 오천(烏川)으로 기
록되었다.
●1831년 -순조 31년에 간행된 화성지(華城誌)에서는 오매천으로 표기되었다.
●1834년 -김정호(金正浩)가 그린 청구도(靑邱圖)에서는 토범(菟汎)천으로 표기되
었는데 여기서 토는 예전에 오(烏)와 같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1835년 -위의 청구도와 마찬가지로 김정호가 쓴 청구요람(靑邱要覽)에서는 토현
(菟峴)천으로 표기 되어 있다.
●1910년-사선읍지(私選邑誌) 영인본. 경기도편 산천조에 오매천(烏梅川)으로 표
시되어 있으며 재부남40리청호면(在府南四十里晴湖面)이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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