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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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위포(오산  은계동),  황새포(오산  탑동대교  부근)  등  포구의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다.  1990년도에  4월경이면  갈매기가  오산천  은계대교에까지  날아와  물고기
                  를  낚아채는  것을  필자가  직접  본적도  있다.
                    오산천  하면  홍수와  장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오산천은  하상이  높아  홍수가
                  질  때에는  오산  시내의  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람이  사는  마을로  토해내곤  했
                  다.  현재  오산동과  대원동의  일부는  상습  침수  지역이어서  오산오색시장(오산전통

                  시장)은  생선  상자가  둥둥  떠다니고,  오산중원사거리,  오산터미널  부근,  옛  화성경
                  찰서(현  CGV오산중앙)  부근  등은  곳곳이  물에  잠겼다.  물이  오산천  범람의  수준으
                  로  되면  이럴  때는  지대가  높은  밀머리나  갈곶동,  오산대학이  있는  청학산  쪽으로
                  피난을  간  경험이  오산천변  오산  시민이라면  모두  갖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인공
                  배수  시설로  이런  황당한  일은  겪지  않고  있다.
                    오산  시내가  우기에  침수하는  경우에는  음식물이나  잔류생물체가  많이  방치되는

                  관계로  1960년대까지만  해도  잡식성이고  사체도  먹는다는  까마귀가  많았던  것이다.
                  이  당시  문학  작품  속에  까마귀가  소재가  되어  표현되기도  했다.
                    용인시  남사면  출생으로서  성호초등,  양정중·고,  고려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오
                  산중  교사(1951~1954)와  오산고  교사(1954~1959),  경성농업대학  조교수,  서울시

                  립  산업대학  교수를  역임한  수필가  구건(具建.  1920  ~  1975)의  작품  중에서  오산
                  에서  까마귀를  보고  작품에  반영한  시  한  편을  감상한다.


                  「까마귀  날던  때」


                  산발머리  양버들  울타리로  싸이어

                  검은  양철지붕  큰  도수장간이
                  윗동네  한복판에  홀로  섰을  때
                  무너진  콘크리트  큰  다리가
                  통나무  기둥  다리이었고

                  오산내  그  물이  섬둑가에  얼어붙고
                  그  큰  쇠장이  섬둑  거리에  섰을  때
                  검푸른  하늘  흰  눈벌판  위를
                  시커먼  까마귀  떼가
                  까옥까옥  날았었다



                  한여름  몇  번  장마  붉덩물로  싸이어
                  시달래  오막살이  집  한  채가
                  사과밭  섬  속에  오똑  섰을  때
                  새탓말  새  학교  터가  똥집  사과밭이었고

                  밀머리는  장마물로  바다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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