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7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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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까지 개통>
그믐날 오후부터
이와 같이 비를 맞고 떠난 승객들은 오산에서 세 정거장을 가서 군포장 정거장에서야 다시
차를 타게 되었는데, 30일이 됨에 “오늘 오후에는 차가 수원정거장까지 올 수가 있다.”는 역장
의 보고가 있음으로 이제는 40리만 걸으면 차를 탈 것이라 하여 어제까지도 걷기를 주저하던
노인과 여자까지 나서게 되었다. 31일 오후 한시까지에 승객은 거의 다 떠나고 차속에 남아있
는 사람은 일본인 한 사람뿐이었었으며, 오산역에서 남으로 평택, 성환 두 곳에도 오산과 같이
차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음으로 그곳에서도 승객이 다수 걸어와서 찻길 위에는 장사꾼과 같
은 사람으로 예정과 같이 그날 오후 2시 45분부터 차는 수원까지 개통되었음으로 도보한 승객
도 모두 연락을 하게 되었더라.
<열차불통구역>
수원에서 성환까지
31일 오후부터 남대문에서 수원까지는 기차가 통하게 되었으며 그날 형편으로는 공사를 급
히 하기만 하면 늦어도 8월 6일내에는 전부 개통이 될 모양이었으나 어제에 이르러 다시 큰비
가 왔음으로 선로의 공사는 어찌할 수 없이 중지가 되었고, 설혹 중지하지 아니한 곳이라도 비
가 오는 관계로 일이 잘 진행되지 아니 하였으며 새로이 상하는 곳도 생기게 되었는데, 지금까
지 경부선의 통제 못하는 구역을 기록하면 다음과 같다더라.
수원오산간
오산성환간
오산에서 수원까지
도보연락의 주의
대황교가 큰 위험
이와 같이 승객의 도보 연락은 아직도 며칠 동안을 계속할지 모르게 되었는데, 위에서 본사
기자가 실제로 걸어온 오산과 수원 사이의 파괴된 정황을 보도하면 먼저 오산천의 철교가 위
태하나 그곳은 그다지 큰 파손은 없었고 응급공사를 하였음으로 안심하고 건널 수가 있으나
오산에서 약 십리를 오면 차길에 246마일이라는 부산에서부터 헤인 마일표가 있는 곳에 사태
가 나서 벌건 흙으로 찻길을 십여 칸이나 덥혀놓았다. 산길로 돌아서 다시 찻길로 접어들면 대
여섯 길이나 되는 높은 찻길이 좌우로 무너지고, 선로가 삼십 칸 가량이나 뒤집히어 걸어가기
일제강점기 신문과 잡지 기사로 보는 오산인의 삶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