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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절 국민투표 및 중요 선거들 75
정치
이 절에서는 앞서 상술한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외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시행되 / 행정
었던 국민투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선거, 그리고 대통령선거인단 선거를 오산시와 관련되어 있
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러한 제도들은 불안정한 정치상황에서 헌정체계가 변경되는
과정에 실시되거나 권위주의체제가 국민들의 직접적 정치참여를 제한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해낸
장치들이기 때문에 1980년대 민주화이행 이후에는 제도적으로 폐기되거나 실재적으로 작동하지 않
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시기의 정치체제의 재구성과 정당화, 그리고 정치체제의 변동에 의
미있는 영향을 끼쳤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간략하게 다루고자 한다.
1. 국민투표
국민투표는 헌법개정이나 중요한 법률안 등을 국민의 표결에 부쳐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제도를 말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헌국회 이래 아홉 차례의 헌법개정이 있었으나 개헌안 국민투표는 1962년
제3공화국 개헌부터 1987년 제6공화국 개헌까지 모두 다섯 차례 실시됐다. 즉, 1962년 10월 17일의
민정이양과 단원제 국회 및 대통령중심제, 1969년 대통령 3선제 개헌, 1972년 11월 21일의 유신헌법,
1980년 10월 22일의 대통령간선제 등 5공화국 헌법, 1987년 10월 27일의 대통령직선제 등 6공화국
헌법 등이다. 여기에 1975년 2월 12일의 유신헌법 찬반 투표를 더하면 국민투표는 모두 6번 실시되었
다.
제1차 국민투표는 5·16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의 주도로 1962년 11월 민정이양을 위한 헌법개
정안이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주요한 내용은 대통령제, 국회단원
제, 개헌 국민투표제 등이었다. 전국적으로 85.3%의 투표율과 78.8%의 찬성투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화성군(오산읍 포함)에서는 투표인 10만 2,033명 가운데 8만 3,836명이 투표해 82.1%의 투표율을 기
록했고, 그 중 75%인 6만 2,947명이 찬성함으로써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다소 강했음을 보
여주었다.
제2차 국민투표는 1969년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이른바 ‘3선개헌’안에 대해 부쳐졌다. 국회의
원의 정수 증원이나 각료겸임 등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초미의 관심은 대통령의 임기를 3기까지 연장
함으로써 박정희의 재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조항에 모아졌다. 전국적으로 77.1%의 투표율과 65.1%
의 찬성투표율에서 알 수 있듯이 박정희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상당히 하락해 있었다. 화성(오
산읍 포함)에서는 투표인 10만 111명 가운데 7만 5,397명이 투표하고 이 가운데 불과 4만 2,116명이
찬성함으로써 찬성투표율이 과반수를 겨우 넘는 55.9%였다.
제3차 국민투표는 이른바 ‘유신개헌안’에 대해 부쳐졌다. 개정안의 요체는 대통령의 권한강화와 간
접선거 선출로 모아지는데, 사실상 종신집권이 가능하도록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개헌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국가적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한편 평화통일의 희망을 심어줌으로써 전국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