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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그래서 군사들에게 적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말을 세워놓고는 물로 말을 씻듯 말의 잔등에 쌀을
부으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니 왜군들은 산꼭대기에 얼마나 물이 많으면 말을 다 씻기느냐 하면서 공
격을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 곳을 말을 씻긴 곳이라고 하여 세마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2) 부산동 매암산(梅岩山)당집의 유래
당집과 관련된 전설들을 보면 왜 그러한 신격을 모시기 위해 당집을 짓게 되었는가(원동 당말)를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부산동은 당집이 왜 현재의 위치에 세워지게 되었는가를 설명하
는 전설이다. 곧 당집의 터가 신께서 정하여 주신 터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이야기라 판단한
다.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에 당집을 지으려고 마을사람들이 나무를 했다. 그리고 우물이 아주 깨끗하고 규모도 큰 곳에
(마을어른들의 말을 빌면 바로 그 자리가 가수 이장희 씨네 우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장희 씨가 이
곳 부산동 출신인지에 대하여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당집을 지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튿날 가보니
나무가 없어진 것이었다.
마을사람들이 없어진 나무를 찾아보니 본래 지으려던 곳에서 산을 넘어야 하는 곳으로 100미터는
이동하여 있는 것이었다. 나무의 무게나 크기나 양을 보아서는 밤새 사람의 힘으로 옮기기는 불가능
하였다.
마을사람들 가운데 당집을 짓고자 마련한 나무를 옮긴 짐승이 어떤 짐승인지 보았다는 사람은 없
으나 호랑이일 것이라고들 하는 말이 돌았다. 그렇게 하여 지금의 자리에 당집을 짓게 된 것이다.
호랑이일 것이라 추정되는 짐승은 곧 이 자리가 마을사람들이 처음에 정하였던 장소보다 더 적합
하고 신성한 곳이라는 것을 일러준 셈이다. 마을신앙에서 호랑이는 산신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
이다. 그렇게 볼 때 부산동 매암산당집의 신격은 산신이다.
(3) 필봉산 대덕암
필봉산에는 예전에 큰 절이 있었고, 암자가 셋이 있었다고 한다. 암자 중 산 중턱에 대덕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여기에도 유명한 전설이 전해진다.
오산시사
이 암자에는 물맛이 좋은 샘물이 있었다. 어느 날 방년 19세 먹은 처녀가 암자에 기도를 하려고 왔
다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분노하여 이 샘에 빠져 죽었다. 처녀가 빠져 죽은 날 밤에 어느 장사가 그
제 샘물을 큰 바위로 막으니 그곳의 암자는 없어졌다고 한다. 그 후에 마을 주민들이 샘물을 이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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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의 시신(屍身)을 꺼내려고 하였으나 바위가 움직이지 않아 꺼내지 못하였다. 그 샘물 옆으로 농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밤만 되면 능구렁이 우는 소리를 오랜 세월 동안 냈다고 하며, 그 후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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