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오산문화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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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오산청소년문학상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모                  몇십 번이나 지나간 시기면 좋겠네. 밥은 잘 챙기
                   든 걸 잊어도 나라는 존재는 잊지 않았던 사람이                  고 다니는 거지? 엄마가 안 챙겨 준다고 또 안 먹

                   다. 내 얼굴은 잊어도 내 이름, 내가 아들이라는                 고 다니지 마. 병원 검사도 꼭 받고. 요즘 엄마가
                   것은 잊지 않았던 사람이다.                             자꾸 까먹으니까 원영이 혼자서도 할 줄 알아야
                   뭐가 그리 급했을까, 도대체 뭐가 급해서 내 곁을                 돼. 평생을 널 지키며 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이리도 빠르게 떠났는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                  게 너무 슬프다, 엄마는. 원영아, 엄마가 나중에
                   다. 문을 열어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원영이 못 알아 봐도 실망하지 마. 그래도 마음은
                   의 냄새가 났다. 아직도 어머니가 있는 것만 같았                 다 기억하고 있어. 엄마는 예전과 아주 조금 달라
                   다. 차마 치우지 못한 이불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져서 생각이 조금 느려진 것일 뿐이야. 그래서 널
                   던져있었다. 바닥은 차가웠고 이불도 차가웠다.                   못 알아보는 건,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너를 기억

                   원래 항상 어머니의 온기로 가득하던 이불이었는                   을 못해서가 아니라, 고민을 거치는 중일뿐이야.
                   데 이제 그것도 느낄 수 없다. 나는 내 스스로가                 이렇게 말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엄마도 무섭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앞서 내가                  원영이 이름은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 원영이

                   살아온 어둠이 어찌 되었든 나를 행복하게 해 주                  얼굴이 자꾸 기억이 안 나... 사진을 몇 번을 봐도
                   는 존재가 있고 진짜 '나'의 삶을 살게 해 주는 누               내 얼굴은 알겠는데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진짜 원
                   군가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받은 행                 영이가 맞는지 헷갈려. 나의 기억 속에 원영이는
                   복이 큰 만큼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                열일곱 살의 원영이로 멈췄는데 너는 십 년이나
                   머니는 갚기도 전에 나에게 인사 한 번 하지 않고                 더 지난 스물일곱인 너로 나타나니 하루가 매일

                   그대로 가버렸다. 아, 나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것                 혼란스러워. 우리 원영이가 언제 이렇게 자랐지.
                   도 없었다. 울고 싶었지만 울지 않았다. 울 수 없                거짓말 같아도 모두들 그게 사실이라고 하니까 믿
                   었으니까. 가진 것을 모두 잃은 나에게 눈물이란                  을게. 스물일곱의 원영아, 엄마가 마지막으로 기

                   건 사치였다.                                     억하는 얼굴은 너였으면 좋겠다. 너로 기억이 되
                   이불을 정리하기 위해 이불을 들췄다. 그러자 떨                  고 싶어. 무서워, 너무. 내가 알고 있는 게 다가 아
                   어지는 종이 한 장. 하얀 종이봉투 위로 써있는 내                니라서 더 무서워. 원영아, 원영아, 원영아. 이름
                   이름. 어머니의 글씨였다. 천천히 편지를 꺼내 읽                 을 몇 번이나 불러도 네 이름은 변함이 없는데 부
                   기 시작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손이                를 때마다 돌아보는 얼굴들은 다 달라. 어쩌면 좋

                   자꾸만 떨렸다. 어머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                  을까. 누가 원영이야. 어떤 사람이 원영이야. 너는
                   며 이 한 문장을 썼을까. 나는 이 편지를 읽으며                 어떤 얼굴을 가진 사람일까... 엄마는 너의 얼굴을
                   막힌 길을 달리고 있던 것을 멈췄다. 어머니는 편                 보고 싶다. 원영아.」

                   지 속에 남아있었다. 나를 떠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마음으로는 결코 나를 잊지 않고 있었
                   「안녕, 아들. 아들이 이 편지를 읽을 때면 어느 계               다. 하지만, 자꾸 나에 대한 기억을 잃어가고 나를
                   절인지 가늠할 수가 없구나. 되도록이면 사계절이                  보면 무서워하는 어머니의 눈빛에 그냥 어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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