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오산문화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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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오산청소년문학상
주는 어머니에 나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 했다. 그 도 어머니는 잊지 않으며 중얼거리던 말이 있으셨
것은 위로였다.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아 주는 것만 다.
으로도 위로가 된 것이다. 울지 않으려고 소매로 “우리 원영이, 우리 원영이...”
눈가를 벅벅 닦았다. 어머니는 내 손을 더욱 꽉 잡 어머니는 매일 원영이가 어디에 있냐며 찾으셨다.
으며 말했다. 원영아, 울어도 돼. 그 말에 나는 더 내가 원영이라고 해도 너는 원영이가 아니라며 고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더 소리를 내서 운 것뿐 개를 흔드셨다. 너는 아니야, 절루 가. 원영이만
이었다. 내가 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볼 거야. 원영이는 어디에 있어.... 지금 당신 앞에
어머니가 자꾸 무언가를 잊는 것 같다고 생각을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던 원영이인데. 어머니는
하기는 했는데, 그게 병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나를 보아도 아니라며 원영이라는 이름만 계속 말
못 했다. 어머니는 단순한 치매도 아니셨다. 점점 하셨다. 어머니는 내 이름을 말하지 않은 순간이
걸음걸이도 이상해졌고, 몸이 경직되셔서 제대로 없었다. 그만큼 내가 어머니에게 소중한 사람이었
움직이지 못 하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는 의미겠지만, 정작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모
어머니의 몸을 주무르며 몸을 풀어드려야 했다. 습에 씁쓸함을 느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
하지만, 나는 계속 어머니의 옆에 있을 수 없었다. 며 생각했다. 그래, 살아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다
늘어나는 병원비를 감당하려면 돈이 있어야 했다. 행이지. 나는 거기서 더한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
한 달을 쉬며 어머니의 옆에 있으니 생활비도 빠 다. 어머니가 나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려도 내가
듯했다. 그래서 다시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어머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이니
니를 이모에게 맡긴 뒤, 나는 한참을 일했다. 집에 나는 천천히 다가가기로 했다. 어머니가 나를 기
못 들어오는 날도 많았기에 어머니를 본다는 것은 억하지 못 해도 지금부터 기억이 나는 사람이 되
어려운 일이었다. 나의 꿈은 어머니와 행복하게 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평생 사는 것이었다. 내 꿈이 좌절할 것 같았다. 바나나를 매일 사갔다. 어머니는 바나나를 보며
그래서 무서워서 더 일했던 것 같다. 돈이 더 생겨 아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서 병원에 갈 수 있다면 어머니를 치료할 수 있겠 바나나를 주는 나를 보며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지. 그래, 그럴 수 있을 거야. 내 스스로를 위로하 “이렇게 착한 사람은 누군데 나한테 바나나를
며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시간이 나서 어머니를 줘?”
만나러 갔을 때는 어머니의 병이 더 심해진 뒤였 “아... 저는 원영이 친구예요.”
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누구냐며 옆에 있던 “원영이 친구야? 아닌데,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접시를 바닥에 던지셨다. 바닥에 던지자 접시가 데.”
깨져 조각이 흩어졌다. 그렇게 내 마음도 깨졌다. “아니, 원영이 아는 형이에요.”
나에 대한 기억이 조금이라도 났으면 하는 마음에 “그래? 근데, 원영이 본 적 있어? 요즘 통 못 보
서 일이 끝나자마자 어머니를 보러 갔지만, 어머 네...”
니는 점점 나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셨다. 그래 “저도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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