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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살청년동맹은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조직의 확대와 대중적 기반을 필요로 했다. 이를 위하여 217
‘오산청년동맹’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1928년 4월 27일 정기총회를 개최하였다. 이날의 회의는 오산리 역사
의 한필호(韓弼鎬) 집에서 열렸으며, 대성학원중건회(大成學院重建會)의 간부들과 유지들, 그리고 맹 / 유적
원 30여 명이 일제 경찰의 경비 속에서 회의를 진행하였다. 이때 오산청년동맹의 위원장으로 공석정
이 선출되었으며 위원으로 이남수, 박건실, 변기재(邊基在), 김기환(金基桓), 한용록, 강우형(姜友馨) · 유물
이 선임되었다. 이날의 주요 토의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47)
1. 本同盟 組織體 및 規約變更의 건
1. 任員選擧의 건
1. 水原靑年同盟 組織 促成의 건
1. 水原 新幹會支會事業 促進의 건
1. 畿湖少年 庭球大會 主催의 건
1. 大成學院 重建에 關한 건
1. 本同盟 備品 整理의 건
오산청년동맹은 수원청년동맹의 조직을 촉성하고, 신간회 수원지회의 사업을 활성화하고자 시도
하였다. 또한, 창설 당시부터 노력하였던 대성학원을 중건하여 교육활동에 주력하고자 하였다.
오산청년동맹은 사실상 조직의 확대 속에서 수원청년동맹을 발족하고자 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오산청년동맹의 대표 공석정과 양감면의 박승극이 합의하여 1929년 6월 9일 수원청년동맹이 결성
48)
되기에 이르렀다. 수원청년동맹은 박승극과 공석정의 관계 속에서 오산청년동맹과 반도청년회의
연합적 성격을 가지고 결성되었다. 공석정이 이끌었던 오산청년동맹은 수원청년동맹의 발족을 위하
여 1929년 6월 2일 오산청년동맹 임시총회를 열었다. 여기서 조직체를 변경하는 동시 명칭을 일단
수원청년동맹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6월 9일 신간회 수원지회 오산반 사무실에서 제1회 임시대회를
열어 조직을 정비하고 신임위원을 선발하고 강령을 통과시켰다. 초기의 수원청년동맹 조직은 다음
과 같다. 49)
○ 執行委員
위원장 : 朴勝極
위 원 : 權舜曾 嚴翼鴻 金道吉 表德仲 李年積 朴正吳 方九鉉 黃銀錫 林凡辰 李德萬 張柱文
韓彰洙 洪貞憲 張鳳云
○ 檢査委員 : 朴奉得 孔錫政 邊基在
47) 『東亞日報』 1928년 4월 27일 .
48) 『昭和 9年 3月 治安情況』 「各種運動情況, 昭和 7年 下半期後의 重要事件 檢擧, 勞農學院赤化事件 檢擧」「附表, 重한 團體表」, 1934年 .
49) 『朝鮮日報』 1929년 6월 1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