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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년생 양용성 94) 227
역사
위 글에서도 여직공들의 노동쟁의를 통한 열악한 노동조건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계급 / 유적
적 차별에 대한 인식과 무산농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투쟁이 강조되고 있다. 이외에도 학생들이 습자
한 내용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어 교육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유물
○ 2년생 차치수
조선농가 노동조합/우리는 서로 도우자/우리는 배워야 살겠다/세계무산소년소녀/일일노동
35錢
○ 2년생 김육남
우리는 노동자 농민/무궁화 꽃 우리 국표/일심전력 성공 승리/모가 난대도 조밥 먹네/우리
들의 힘으로도/배워야만 살 수 있다.
○ 2년생 양용성
맞는 새해 마음 단결
○ 3년생 이문성
바쁜 이때 놀고 먹어/어린이날 우리명절/옳은 일을 알고 살자
위 내용들은 주로 식민지 현실 속에 노동자와 농민들의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 표현되었다. 그리고
구습에 따른 계급적 차별이 존재하고 있음이 강조되고 있다. 이것은 오산노농학원이 계급의식의 주
입과 함께 노동자, 농민 등의 무산자들을 위한 투쟁을 강조한 결과였다.
이외에도 홍경후 등의 교사들은 1931년 9월 운동회에서도 프롤레타리아 카툰 만화집을 응용한 전
단과 소비에트마크가 들어간 적기(赤旗)를 만들어 행사를 진행하였다. 운동회에서 학생들에게 단결
가(團結歌)를 가르치고, 적기를 높이 걸고 혁명의 상징인 것을 학생들에게 고취시켰다. 또한, 학원교
실에서는 ‘전투’, ‘승리’, ‘혁명연차표’ 등을 걸고 혁명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리고 각종 격문 및 출판물
등을 구입하여 이를 조명재 등 교사에게 회람시켜 학생들에 대한 교육자료로 이용했다. 그리고 이론
투사의 양성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토론회를 벌였다. 장래의 혁명가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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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회주의 이론의 전략적 학습뿐만 아니라 선전과 선동의 전술적 훈련이기도 했다. 이와 같
이 오산노농학원에서는 철저한 혁명투사의 양성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오산을 중심으로 벌어진 사회주의 교육운동과 야학운동은 일제강점기 식민지배를 극복하고자 한
조국독립을 위한 투쟁이었다. 이것은 당시 국내 독립운동의 중요한 흐름이었으며, 일제는 강력한 탄
94) 『思想에 關한 情報(4)』 「勞農學院赤化事件 檢擧에 關한 件」水警高秘 제3709호, 1932년 9월 11일 : 『思想에 關한 情報(4)』 「勞農學院赤
化事件 檢擧에 關한 件」京高秘 제5746호, 1932년 9월 14일 .
95) 『思想에 關한 情報(4)』 「勞農學院赤化事件 檢擧에 關한 件」水警高秘 제3709호, 1932년 9월 11일 : 『思想에 關한 情報(4)』 「勞農學院赤
化事件 檢擧에 關한 件」京高秘 제5746호, 1932년 9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