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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무산노동자 농민의 자제에 대해 유소년 경부터 혁명의식을 주입하여 이를 좌익적 교양훈련하는 것과 같이 231
된 것으로서 맡겨 밀의한 결과 인속하여 노동야학으로 그 명칭을 변경하고 실질상 동인 등의 손에 의해 경영한 것 역사
임. / 유적
그리고 변기재 일파의 지부간부들로서는 그 포장한 공산주의적 의식교육을 철저하게하면서 종래의 교사 이성
모(당시 연희전문 1년생)에 뜻을 알리고 오산지부 맹원으로 획득한 것으로서 곧바로 동인을 수원청년동맹 오산지 · 유물
부 집행위원 겸 교양부장으로 지명하여 다시 교양방침을 종래와 같이 문자보급으로서 능사함으로 나아가고 의식
분자 투쟁분자를 양상할 목적으로서 나아감으로써 교과서도 새로 노동독본 노동산술 기타 좌익잡지 ‘성의 국’등을
채용하여 교양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노동야학의 교양을 철저하게 심화할 것을 그 경영주체의 합법성을 획득한 것
으로 안전하게 또한 유리한 일에 착안하여 1930년 3월 20일경 변기재는 오산지부 집행위원 조명재 동 이원식 동
박정오 동 박부산 동 이수경 회 1명과 당시 건축중인 오산사회단체연합회관에 비밀리에 집행위원회를 개최하여
변기재 사회로서 노농학원의 경영주체를 정식으로 수원청년동맹 오산지부의 교양부 사업으로서 경영할 것, 동시
에 그들의 이상인 혁명투쟁 양성의 급무를 설명하기에 일동 이에 찬동하여 오는 정기대회에 부의할 일로 결의함.
3월 30일 동지부 정기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석상 수원청년동맹집행위원장 박승극은 축사로서 “내외정세를 말하면
무산교육이 장래의 혁명을 대성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본지부는 이미 그 계획이 있는 것을 듣고 성심껏 기의(마땅
한 기회)를 얻은 것에 흔쾌하다”는 뜻을 말한 후 사회자 변기재로부터 노동야학의 건에 대해 전집행위원회의 결의
를 바탕으로 제안 이유를 설명하여 그 경영을 동지부 교양부 사업으로 할것에 만장이 이의없이 의결하였다. 그 후
노동야학은 8월 14일 집행위원회에서 변기재로부터 노농학원으로 개칭할 것을 제안하였고 이 또한 어떠한 이의없
이 가결되어 개칭되었는데 그 이유는 소비에트-러시아의 국명에 연유해서 명명한 것이다.
3. 계급의식 주입의 교육방법
1) 교과서
노동독본 노동산술 잡지별나라(星의 國) 조선농민독본에 의해 혹은 사회의 모순인 실례를 들어서 직접교양한
경우임.
2) 습자
별지 제1호와 같은 교사로서 현실의 문제를 포착해서 계급적 설명을 더하여 습자하고 있었음.
3) 현실의 기회를 포착해서 교육한 것
(1) 별지 제2호는 노농학원 생도 일동에게 이원식이 등사하여 건네준 통신 등의 주의서
(2) 제3호는 교사 이성모가 본년 4월경 동학원에서 사용중인 좌익잡지로부터 서취(뽑아 써서)해서 교수한 것.
(3) 제4호는 교사 조명재가 서취하여 가르친 것.
(4) 이외에 황경후는 학원생도에게 國結歌를 가르쳐 운동회에서는 소비에트 마크가 들어간 적기를 지닌 것의
연습을 위한 일이다.
4) 환경교육으로서는 오산사회단체연합회관을 노농학원에서 사용하여 각종 사상단체의 착교를 화려하게 흔들
며 대회에서는 소비에트-러시아 마크를 표현한 것을 높이 걸고 혁명의 상징인 것을 학동에게 의식하였으며 또한
학원교실에서는 ‘전투’, ‘승리’, ‘혁명연차표’ 등을 걸고 혁명의식에 감화교육을 함.
5) 각종비합법 출판물에 의한 교육
노농학원 책임자 변기재가 메대 격문 소년전기에 뉴스 등 각종의 비합법 출판물을 들여온 때는 반드시 이를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