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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原郡邑誌』山城 8) 511
禿城 역사
…(전략)…장헌세자가 온양으로 거둥할 적에 세남교의 물이 불어 넘쳐 순회차 임어하셨다. 남문루 / 유적
에서 하교…(후략)… · 유물
위의 기록을 보면 경진년 유숙 당시 장헌세자가 임어한 장소가 기록되어 있는데 『朝鮮王朝實錄』에
는 진남루, 『華城志』와 『水原郡邑誌』에는 남문루로 이 두 곳을 제외하고 장헌세자가 임어하였던 다른
9)
장소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 따라서 장헌세자가 임어했던 장소로 기록되어 있는 진남루와 남문루를
동일한 장소로 보고 진남루를 남문의 문루로 판단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은 남문의 이름과 관련한 『水原郡邑誌』의 기록으로 진남루를 남문으로 판단하게 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근거로 생각되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水原郡邑誌』山城 10)
禿城
…(전략)…네 개의 문이 있는데 남문을 진남문…(후략)…
위의 기록을 보면 남문의 이름은 ‘鎭南門’으로 독산성 내 건물 중 유일하게 ‘鎭南樓’와 동일한 한자
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명칭의 동일성을 근거로 하여 진남루를 남문의 문루로 판단한 것으로 생각
된다. 또한 『水原郡邑誌』에서 진남루를 초루로 표현(『水原郡邑誌』 ①)하고 있는데 위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초루를 성위에 누각이 아닌 문루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건물명에 사용된 한자의 동일
성과 초루의 해석을 토대로 진남루와 남문의 문루를 동일한 건물로 판단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華城志』의 기록을 살펴보면 『水原郡邑誌』에 기록된 남문의 이름만으로 진남루를 문루로 판
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華城志』 山城 11)
城堞
…(전략)…네 개의 문이 있는데 남문을 ㅁㅁㅁ 옛날에는 이름이 없었으나 지금 임금께서 신묘년(순
조31, 1831)에 비로소 편액하였다.…(후략)…
8) 『水原郡邑誌』山城 禿城
…(전략)…庚辰 莊獻世子 溫幸時因細藍橋水漲 歷臨御南門樓 下敎曰…(후략)…
9) 운주당의 경우는 숙소 또는 ‘임어하여 숙박하였다‘라고 별도의 기록들이 남아있고 ’임어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 장소는 진남루와,
남문루가 유일하다.
10) 『水原郡邑誌』山城 禿城
…(전략)…有四門南曰 鎭南門…(후략)…
11) 『華城志』 山城 城堞
…(전략)…有四門南曰 ㅁㅁㅁ 舊無名 當宁辛卯始 扁額…(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