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오산문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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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오산청소년문학상 시상식과 작품 감상







           하루를 보내며 가족과의 소중한 기억을 찬찬히                     그리고 그 목은 감동을 주지 못했다.
           기억해 나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심지어는 쥐의 회색을 따라했다. 쥐의 회색은 세
           나는 기억을 찾아내는 짓을 그만두고 쪽지를 쓴                    련되었고 예뻤으며 멋졌다. 하지만 카멜레온의 회
           의문의 사나이가 나를 찾지 못하는, 아주 먼 곳으                  색은 촌스러웠으며 꼬질꼬질했고 더러웠다.

           로 여행을 떠나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선                   이외에도 정말 많은 것들을 따라했다. 호랑이의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감                    용맹한 주황색, 바나나의 달콤한 노란 색, 꽃의
           시가 제일 허술한 새벽시간에 도망가기로 정했다.                   매혹적인 보라색, 구름의 포근한 하얀색까지. 정
           또한, 해외 도주 보다는 산속 깊숙이 숨어 들어가                  말 다양한 것들을 따라한 카멜레온이었다.

           시골마을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것이 생존확률                     카멜레온은 기억을 되찾던 6개월 동안 농사를 하
           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쪽지에 쓰                   고 주민들과 소통을 하며 친해지기만 했을 뿐만
           여 있던 날짜로부터 D-1인 날, 나는 결국 도망을                 아니라 한 여인과의 뜨거운 사랑을 키워나갔다.
           갔다. 도망가는 것은 성공적이었고 어느 덧, 도망                  기억을 되찾고 나서는 4달동안 가족과 함께 지냈

           가고 나서부터 1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으며 가족들과 함께한 모든 순간이 값비싼 보석
           1년이란 시간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D-1인                 과 바꾸자고 제안을 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바
           날 나는 새벽 2시에 야산을 등반했고 운 좋게 시                  꾸지 못할 뜻 깊은 추억이 되어버렸다. 나머지 2
           골마을 하나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약 6개월이란                   개월 동안은 사랑하는 여인과의 영원한 사랑을

           시간동안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나’가 아닌 ‘나’                약속했고 그 여인과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행복
           를 위한 삶, ‘나’를 위한 행복을 찾아가며 자연스                 한 고민을 했다. 그리고 지금, 카멜레온은 사랑하
           럽게 내 기억을 되찾게 되었다.                            는 여인과의 결혼을 2주 앞두고 있었다.
           나는 카멜레온이었다. 남의 색깔을 따라하는 카                    결혼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햇빛 한 줄기가

           멜레온.                                         내 얼굴을 비춰 얼굴을 한껏 찡그리면서 일어났
           말이 빠르게 달리는 것을 보고 그 장점을, 그 특                  다. 바로 눈에 띈 것은 하얀색 책상위에 있던 검은
           징을 따라하여 발의 색깔을 갈색으로 바꾸었다.                    색 쪽지였다. 나는 누구이고 왜 이곳에 있는지 등
           아니, 따라했다. 따라한 발은 타인이 보았을 때                   의 생각이 들기도 전에 그 쪽지를 꼭 읽어봐야 될

           멋져보였고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 장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곧장 쪽지를 펼쳐보았다.
           점, 내 특징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발은 본래의                  ‘갑자기 약속이 잡혀서 먼저 나갔어. 말도 안하고
           장점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나가서 미안해. 밥은 바빠서 못했으니까 밖에서
           어느 날은 닭의 빨강색을 따라했다. 똑같이 아침                   사먹든 시켜먹든 해서 꼭 챙겨먹어~. 귀찮다고 거

           에 노래를 불렀고 그 노랫소리에 타인들이 일어났                   르지 말고.’
           다. 하지만 그것은 내 장점, 내 특징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여인이 적어놓은 쪽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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