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2022년 03월 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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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의 전시포커스





















        공명의 숲,  아트사이드 전시장면1                             공명의 숲,  아트사이드 전시장면2





















        공명의 숲,  아트사이드 전시장면3                             공명의 숲,  아트사이드 전시장면4



         한원석의 미학,                                       자체이다. 곰브리치(Ernst Gombrich)는 숭고를 “뜻이 높고 고상한” 동시에 “

                                                        불완전한 나를 끌어안는 삶의 태도”라고 평했다. ‘sub=~을 향해’와 ‘limis=경
         The Re-Origin                                  계나 문지방’을 의미하는 숭고의 내면에는 경계를 넘는 용기와 도전, 위험하
                                                        고 절망적인 동시에 안전하고 희망적인 예술의 양가성이 존재한다. 그 사이
                                                        를 항해하는 한원석의 절박함은 천재성과 비난의 줄다리 속에서 자신만의 확
                                                        고한 정체성을 갖는다. “서울시 ‘흉물 조형물’ 놀이?”라는 비난에 가까운 ‘첨성
        글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대 공공설치물’ 논란(2020) 또한 같은 맥락이다. 정동길 입구에 세워져 경관을
        작가 한원석이 돌아왔다. 대체 어디를 다녀왔기에 돌아왔다고 언급하는가.         해친다는 여론 돌팔매질을 당한 작품 <환생(Rebirth)>은 폐자동차에서 뗀 헤
        좀처럼 말이 없는 한원석은 소리와 재생에너지를 전통영역과 더불어 소생          드라이트 1347개를 이어 붙여 만든 것으로 “빛이 코로나19 사태로 몸과 마음
        시키는 작가다. 만들어진 작품은 말이 필요 없는 탁월한 감각으로 완벽을 추       이 지친 시민들을 위로해줄 것”이라는 작가의 해석에도 불구하고, 90년대 후
        구한다. 작품들은 ‘악의 꽃-The Flower of Evil’에 머물다가도 이내 ‘화해(花  반 철거논란으로 몸살을 앓은 프랭크 스텔라의 <아마벨 논쟁>을 고스란히 옮
        解)-Reconciled’와 ‘환생-Rebirth’을 오간다. 욕망의 시작과 끝을 이분법으로   겨놓은 모양새다. 실제로 20여년이 훌쩍 넘은 오늘까지 업사이클링 작품에 대
        나눈 다중인격처럼, 그의 작품이 추구하는 세계관은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하        한 대중들의 인식은 도시미관에 까지 미칠 만큼 선진적이지 못하다. 이에 작
        기 어렵다. 작품에 반영된 복합적 정체성, 하지만 세심하게 그 사이를 오가다      가는 높고 고상한 의미의 숭고가 아닌, 세상의 편견에 도전하는 예술개념의
        보면, 마치 책의 행간들이 정갈한 구조 속에서 정돈되듯 ‘창조를 향한 괴물 같     확장성에 더 확고한 자세를 취한다. 재생(再生)을 통해 본질(The Re-Origin)
        은 숭고의지’가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는 한원       을 질문하고, 경계에 서서 깨우쳐 나가는 인식 속에서 새로운 작품에 도전한
        석 작가의 10번째 개인전 <공명의 숲 : The Resonance Forest> (2.11~3.5)  다는 뜻이다. 이른바 ‘부정적 수용능력’은 모순상태에 있는 자기 삶을 그대로
        전시가 진행 중이다.                                     껴안으려는 태도이다.
        재생의 발견, 숭고의 베일을 벗기다.                            숭고라는 단어를 처음 쓴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이를 “단적으로 큰 것(절
        건축가로 분류되기도 아트 디렉터로 분류되기도 하는 작가에게 ‘숭고(崇高,        대적으로 큰 것=모든 비교를 뛰어넘어 큰 가치)”이라고 정의했다. 작가의 작
        Erhaben/sublime)’란 예술하는 태도이자 타협해야하는 ‘미술계의 선입견’ 그   품들은 작은 재생 작품들이 피스를 이루고 총체성의 표상으로 이어지는 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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