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2022년 03월 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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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의 숲,  아트사이드 전시장면5



            적 가치로 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신작 커미션들은 완       적인 공명의 소리(Sound Forest)로까지 확장되었다. 소리 너머의 의미(숭고
            전성에 대한 자기규정을 깨는 동시에, 감성적인 제약을 받는 유한한 인간에 기      적 화해)를 찾고자 만든 Daybreak 시리즈는 동서미감의 조형성을 결합한 동
            초한 ‘본질=심연(Abgrund)’을 발견하는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작가의 작  시에, 일 방향으로 쏘아대는 첼로용·바이올린용 CD/앰프/스피커 등을 대체한
            품들은 불쾌한 정서를 유발하다가 가능성을 발견하는 ‘정반합적 쾌감(Desire     무지향성 소리 공간 속에서 문명이 만든 쓰레기를 벗어난 ‘자연과 유사한 소
            combined with positive and negative)’을 보여주는데, 한원석의 숭고는 불쾌  리’를 지향한다. 겸허한 인간의 실존을 추구하는 동시에 《중용(中庸)》이 언급
            감을 극복한 끝에 발생하는 ‘깨달음의 영역’을 보여준다.                 한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본성의 가치=The Origin)을 좇음으로써, 개체의
                                                            본질이 전체의 본질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씨실 날실로 이어진 마대(麻
            소리의 숲, 공명(共鳴)으로 공감(共感)하라!                       袋) 시리즈 역시 형식상의 요구만 다를 뿐, 작가(혹은 우리 모두)의 이중적 성
             Sound Forest와 담배꽁초로 창조된 ‘정크 오브제’들은 한원석이 지난 20여   향을 상징적으로 화해시킨 작업이다. 작가는 마대작업은 “인간과 인간, 인간
            년 간 추구해온 ‘숭고한 재생의지’를 설명하기 위한 개체들이다. 수많은 검은      과 환경, 인간과 사물의 관계들을 상징한다.”며 “씨실(weft)은 스스로를, 날실
            스피커들이 창출하는 소리의 공명은 악(惡)에 받친 젊은 세월과 수없이 화해(      은 버려지다는 어원을 가진 대상(warp)이기에, 버려진 것(쓰레기)에 대한 애
            和解, 혹은 타협)해야 했던 과거들이 모인 공감의 에너지이다. 출처를 찾기 어     착은 관계미학적 숭고와 연계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려운 작은 소리들은 몰입하면 할수록 자연을 닮은 무아(無我)의 소리로 감상
            자들을 이끈다. 쓰레기와 문명, 외연과 내연 사이의 이원론적 경계 사이에서       작가의 작품들은 메리 셸리가 21세에 발표한 최초의 SF(과학소설) <프랑켄슈
            건축가의 구조물 같은 공감의 미학은 폐(廢) 스피커에서 피어나는 시각화된        타인(1818)>을 떠오르게 한다. 괴물의 탄생과 성장이 당대에 알려졌던 과학
            소리작업을 통해 가시화된다. 인간의 오감을 ‘욕망의 다면성’ 속에서 해석해온      적 사실에 기초해 창작되었고, 과학기술이 남긴 유산이 우리자체가 되는 현실
            작가는 자신조차 괴물이 되어가는 현대사회를 자신이 만들어온 ‘재생품을 활        을 고발했기 때문일까. 어찌 보면 소설 자체보다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용한 예술작품’으로 형상화한다. 그 안에서 대상이 무엇을 연상시키는가는 중       캐릭터는 사실 괴물이 아닌 괴물을 창조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서 우리 모두
            요하지 않다. 이미 2003년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했던 개인전 《악의 꽃-The   가 괴물일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주장한
            Flower of Evil》에서 “버리는 나는 범죄자이다.”임을 외치며 현대쾌락문화의   ‘자연 상태의 인간(Human in nature)’, 혹은 ‘고상한 야만인(Noble savage)’
            상징인 담배꽁초에 면류관을 씌운 작가는 2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환경참여       을 연상시키는 한원석의 작품들 속에는 ‘반성하는 자아’가 존재한다. 개인에
            적 행위자”로 활동 중이다. ‘작품의 외피’보다 ‘내안의 괴물을 잠재우는 깨달     게는 자아와 내면이 있다. 개인은 자신 안에 있는 내면을 들여다보며 반성하
            음”이 중요하다는 점을 모두에게 공감시키기 위함이다.                   는 존재다. 한원석의 작품이 이해하기 어려운 까닭은 화해의 세계관을 드러
                                                            내기 위해 사용된 ‘예술로 환원된 쓰레기’가 갖는 편견 때문이다. 굴곡 많은 도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숭고의 형상화는 소리와 마대작업으로 이어진다.         전의지와 만난 작가의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은 편견을 깨는 과정이자, 우
            담배작업과의 연속성을 갖는 작업들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연민(憐愍)인 동시       리안의 괴물을 깨닫는 과정이기에 ‘새로운 아방가르드 향한 동력’으로 기능
            에, ‘버려짐’(신경질적 불편함)에 저항하던 과거를 극복해낸, 은유적이고 함축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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