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전시가이드 2022년 06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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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놋다 2209, 90x90cm, 캔버스에 장지.혼합재료, 2022






            남을 수 있다. 정성을 들인 그림들이 하나둘 탄생할 때마다 마음의 수고를 덜      의 화육법(畫六法, 동양화를 그리는 6가지 방법)이 단계별로 차근히 녹아들
            었다는 작가는 30년 이상의 그림들이 이어져 지금-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        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실물의 수준 높은 보석들을 전이모사(傳移模寫)하
            다. 과거 먹을 사용했던 풍경들이 바탕이 되고 80년대 이후 만난 경쾌한 컬러     고, 전체 화면의 구조를 세우기 위해 골법용필(骨法用筆) 한 후, 다양한 꽃을
            가 ‘최지윤 만의 색’으로 거듭나면서, 그 안에는 세상의 아름다움·풍요로움·경     응물상형(應物象形)하여 채색과 구도를 삼는 수류부채(隨類賦彩)와 경영위치
            쾌함·사랑스러움 등의 감정들이 조화롭게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색과 어우       (經營位置)의 과정을 거친 연후에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최지
            러진 보석과 꽃의 찬란한 어우러짐은 삶의 애환을 그림 속에서 위로받는 모        윤의 화면 속에선 ‘영원한 사랑의 기운이 감도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순간
            티브로 자리한다. 보석의 빛이 나를 지켜줄 것 같다는 생각들, 영원히 떠나지      이 펼쳐지는 것이다.
            않을 것이라는 믿음, 다양한 상징을 담아낸 세계 최고의 보석들 또한 그 시대
            의 장인이 공력을 통해 탄생시킨 빛나는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이들 대상을        작가는 이러한 채집과정 속에서 다양한 꽃을 만난다. 이번 전시에 등장한 꽃
            집중해서 그리다 보면 시끄러운 맘이 진정되고, 작품을 이어가는 공력을 얻        만 꼽아 도, 앵두꽃·능수벚꽃·감자꽃·산수유·겹벚꽃·아미초·끈끈이대나물·홍
            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결국 인간을 살게 하는 가장 위대한 가치가 사랑인     매화·능수백매화·배꽃·물망초 등이 자리한다. 색이 있는 여백, 어디선가 내리
            것처럼, 그 어떤 분쟁과 갈등마저도 사랑이 있다면 서로를 향한 믿음으로 바       뻗은 꽃가지들, 반짝이는 보석의 동물들, 마띠에르가 살아있는 지지대로서의
            뀔 수 있다.”고 말한다.                                  추상표현(여백 색을 벗어나지 않는 구조) 등이 독특한 화면추구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단 한 점도 같은 구성을 찾을 수 없다. 대상들 속의 여러 물질이 섞여
            그림 속 에덴동산, 빛나는 삶을 향한 메시지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관를 창출하는 것이다.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색
                                                            감과 구도이다. 이는 전통과 현대 사이의 대화이자 화조화(花鳥畵)의 현대화
            동물, 사람, 자연 사이의 어우러짐은 색이 주는 위로와 만나 “그려내면서 사      된 스토리텔링을 위한 기본적 장치이다. 작가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
            랑은 영원할 거야.”라는 작가의 속삭임(사랑의 주문)으로 이어진다. 우리 모두     한다. “앵두꽃은 수줍음을, 배꽃은 온화한 사랑을 상징한다. 귀한 대상을 향한
            는 여우와 산수유가 만난 동화 같은 그림 속에서 “너의 프로포즈는 영원할거       꽃말과 신에게 바칠 만큼 귀한 대상이었던 보석들, 최상의 아름다움을 그려서
            야”라는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사랑의 주문에 빠진다. 삶은 고통 속에서 치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그리는 동력이 된다. 보석과 꽃이 디자인과
            유를 얻고, 그리움 속에서 사랑을 배운다. 극복과 치유 속에서 배우는 이율배      예술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 것처럼, 나의 작품을 통해 보는 이의 마음이 고귀
            반적 삶의 순간들, 인간이 욕망하지 않았다면 쫓겨나지 않았을 빛나는 사랑의       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화가로서의 사명감은 사랑에 대한 매개이
            숲이 ‘그림 속 에덴동산’이 되어 우리 앞에 펼쳐진다. “Let life shine” 삶을 빛  자 전달체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나게 하라는 주문들은 보석 채집의 과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각 브랜
            드의 보석들을 핀터레스트 등과 같은 고화질의 화면을 통해 채집한다. 부셰론       작가가 우리 삶에 부여한 사랑의 순간들은 빛나는 전통과 현대와의 대화 속
            (Busheron), 까르띠에(Cartier), 반클리프(Van Cleef) 등 세계 최고의 브랜드  에서 더욱 견고해진다. 크리스털 레진이 콜라주 된 화면들은 우리 삶을 작품
            가 빚어낸 보석의 모티브들을 모두 연구해 손으로 빛을 옮기는 과정을 수반한       과 물화(物象化, Versachlichung)시켜 ‘사랑하놋다(사랑하는구나)’를 속삭이
            다. 많은 이들이 최지윤의 보석그림을 실사(實事)로 오해하는 이유도 “‘반클리     게 만든다. 최지윤의 그림은 지고지순한 화조화이기 보다, 삶을 도전하고 새
            프의 노아의 방주’ 시리즈의 정교한 동물표현을 손으로 옮겨 그리는 것이 과       로이 꿈을 노래토록 하는 ‘스스로 빛나는 그림’이다. 과거의 회상으로부터 해
            연 가능할 것인가”라고 반문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찾고 그리는 일, 이와 어     방시켜 빛나는 삶을 향한 메시지로 인도하는 그림, 말 그대로 그림 속 에덴동
            울리는 꽃을 조화롭게 구성하는 방식까지 말 그대로, 작가의 화면에는 동양        산과 조우토록 하는 ‘사랑의 마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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