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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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琴書以消憂(낙금서이소우)           거문고 타고 책 읽으며 시름 달래련다.

                    農人告余以春及(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 일러주니

                    將有事於西疇(장유사어서주)           내일 서쪽 밭으로 나가 밭을 갈련다.



                 도연명(陶淵明)은 41살에 귀거래(歸去來)했다고 했던가. 그보다 좀 늦은 나이에

               충청도 수안보 산골짜기에 새로운 터전을 잡은 나는 봄을 알리는 우수 때부터

               약초를 열심히 가꾸기 시작했다. 물론 중국 명나라의 이시진이나 조선 시대의
               허준(許浚)이 약초를 연구한 것에야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내가 약초 재배에 몰

               두하고자 했던 것은 약초는 글자 그대로 사람과 세상의 ‘병을 고치는 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약초재배 계기란 바로 그것이었다. 당분간 속세와 단절하고, 불법 다단계추방

               시민운동 친지들과도 연락을 끊은 채 도(道)를 찾는 심정으로 산속에서 약초재배
               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조문도(朝聞道)면 석사가(夕死可)라…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님의 말씀 그대로, 나는 어지러운 세상을 위해 무엇

               인가 해야 한다는 심정보다는,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귀거래하고 약

               초 재배를 선택했다.
                 ‘어지러운 세상’으로 진단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 10여 년에 걸쳐 서울 강

               남의 테헤란로에서 불법 다단계 피해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대신해 법적

               소송에 나서며, 그들을 대변해 다시는 이 땅에 불법 다단계나 방문판매가 없어

               져야 한다고 계몽활동에 나섰지만 그들의 가슴에 맺힌 아픔까지 치료할 수는 없

               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다른 근본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단순한 법적 투쟁은 자칫





             46 노규수의 사회 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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