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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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에 생각하는 시민혁명
우리나라 학교는 3월 학기제다. 그래서 1월 1일이 아닌 3월 1일이 새 학년(學
年)의 시작일이 된다. 하지만 초중고 대학 시절 모두 3월 1일에 등교해본 적이 없
다. 삼일절이 공휴일이기 때문에 늘 3월 2일이 개강일이었다. 삼일절에 대부분
유관순 열사를 생각하게 되지만, 대학 시절부터 나는 또 다른 한 사람을 더 생각
하게 되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출신인 신철(申哲)이었다.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으로 일본군(순경, 헌병)에 사살당한 우리 국민의 수가
7,5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부상자는 1만 5,961명이다. 당시 2,000만 국민 중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전국적으로 200만 명이라고 하니, 오직 맨손뿐인 식
민지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시위에 가담한 상황으로는 놀라운 규모다.
3.1운동의 거사 일을 3월 1일로 잡게 된 것은 당시 일본 유학 중인 600여 명의
조선 학생들이 동경에 모여 조선기독교청년회가 작성한 조선독립선언서를 발
표한 날이 2월 8일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3.1운동의 주역들인 민족대
표 33인의 입장에서 보면 적국의 심장부에서 터진 조선 독립운동의 열기가 채
식기 전에 우리 땅에서 다시 점화해 지속적인 민족운동으로 이어갈 필요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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