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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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것이다.

                  더구나 일본에 의한 독살설이 나돈 고종의 장례식이 3월 3일이어서 전국에서

                애도 인파가 속속 서울로 몰려들고 있어 3월 3일을 거사일로 삼자는 의견도 있
                었다. 하지만 그것은 유혈충돌로 이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조선의 마지막 황

                제였던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의견에 묻혀 3월 1일로 앞당겨졌다는 것

                이다.

                  그러나 3.1운동이 3월 1일에 일어난 그 배후에 악명 높은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의 역할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거사 일을 사흘 앞둔 2월 26일 저녁 무렵이었다. 어스름이 어둠이 깔리는 서울

                안국동 사거리 근처에 한 사내가 땅 밑을 바라보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다름 아

                닌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신철(申哲)이었다.

                  그는 악질 중의 악질 형사였다. 그에게는 일본 경찰이 키운 사냥개 1호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종로경찰서 10년의 경력으로 사냥개와 같이 예민한 후각

                을 갖고 우리 애국지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손금 보듯 들여다보고 있었던 인물

                이었다.

                  그날 그는 발밑으로 들려오는 어떤 기계음 소리를 육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고 한다. 그는 순간적으로 옆 건물인 보성사(普成社)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천도교

                에 소속된 인쇄소였다. 불빛은 없었다. 하지만 닫힌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가 보

                니 안은 불빛이 환했고 윤전기에서는 무엇인가 인쇄 중이었다.

                  인쇄공들을 향해 권총을 들이대고 인쇄물을 빼내 보니, 종로경찰서가 혈안이

                될 정도로 시위 증거를 찾고 있던 ‘조선독립선언서’였다. 인쇄소를 급습당한 보
                성사 사장 이종일(李鍾一, 33인의 한 사람)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그러나 신철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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