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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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나무는 또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식량 걱정을 안 하고 사

               는 나라가 됐다고 하지만, 196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흉년이 들 때
               는 물론이요, 보릿고개라는 4~5월 춘궁기가 오면 풀뿌리를 캐고 나무껍질을 벗

               겨 먹었던 궁핍한 나라였다. 그래서 각 지역별로 흉년의 식량부족을 대비하기

               위해 밤나무 잣나무 감나무 등은 물론 도토리묵을 쑬 수 있는 상수리나무를 심

               고 가꾸었다.
                 내가 어렸을 때인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대대적인 산림녹화 운동

               이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고향, 서울 광진구 구의동 뒷산인 아차산과

               용마산에도 4월 5일 식목일이면 인근 마을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참여해 나무를

               심었는데, 어른들의 말씀으로는 그 식목 행렬이 아차산 최북단인 망우리 공동묘

               지 지역에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어릴 때부터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었

               다. 하지만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2009년에 서울을 떠나기로 작심하고 충청도

               수안보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산에서 약초를 심은 것이 계기가 돼 자미

               원이라는 약초밭을 오늘도 동료들과 함께 가꾸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말이 약
               초일 뿐이지, 약재로 심고 가꾸는 것은 대부분 나무뿌리이고 열매다. 미국이나

               중남미에서 아사이베리나 블루베리를 심고 가꾸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그

               열매나무들이 자라는 수안보의 자미원을 ‘행복나무과수원’이라는 별칭으로 함

               께 부르고 있다.

                 내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행복나무과수원에 대한 꿈을 처음 간직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불법다단계추방 시민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으니, 수안





             78 노규수의 사회 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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