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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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고구려의 내실을 기해
나갔지만, 결국 고구려는 660년대 연개소문의 독재정치와 그로 인한 국론분열
로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북쪽을 고구려가 막고 있었기에, 역설적으로 신라가 당나라의 위협을
극복하고 대동강 이남의 땅을 통일시킬 수 있었다. 중국이 대대적으로 우리나라
를 병합시키기 위해 나섰던 첫 번째 전쟁은 613년 중국을 통일한 수 양제였다.
그러나 살수에서 을지문덕에 패했고 결국 수나라도 멸망했다. 이후 645년 당 태
종이 수나라 원수를 갚고, 원래 ‘중국 땅’이었던 요동(고구려)을 회복한다는 명
목으로 한반도 정벌에 나섰지만, 진입로 입구인 안시성에서 양만춘에 패하고 만
다.
668년 당시 세계 최강국인 당나라가 고구려를 쓰러뜨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
었다. 그래서 신라와의 연합작전이 필요했다. 만일 당나라 혼자의 힘으로 고구
려를 정복할 수 있었다면, 곧 신라와 백제까지 일거에 흡수할 수 있었고, 우리나
라는 중국의 영토와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갔을 것이다.
중국은 조공을 받던 주변 소수민족들의 영토를 차츰차츰 자국에 편입시켜 왔
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영토를 보존한 독립국가로 남아 있다. 우리야 우리가
독립국가라는 것이 당연하지만, 세계인의 시각에서는 중국의 변방 약소국 중의
하나가 중국에 흡수되지 않은 것을 세계 외교사의 연구과제로 보고 있다.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한 것도
아쉽다. 하지만 고구려로 인해 신라가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결국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의 현재 영토를 지켜낼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일부 역사
학자들의 견해다. 그것이 역사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역사는 그렇게 묘한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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