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사회돋보기)노규수 컬럼집-본문(최종)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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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들에 따르면 광개토대왕 시절의 백제는 결코 약소국이 아니었다. 정
규부대는 물론 지방에 근거한 호족세력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당시 백
제의 인구는 고구려보다 많았다고 한다. 땅만 넓었지 이렇다 할 생산기반과 연
결 네트워크가 부족했던 고구려에 비해 호남과 경기의 곡창지대를 소유하고 있
던 백제는 백성 부양력도 높았고, 그래서 인구나 경제력 면에서 모두 고구려를
앞서고 있었다.
광개토대왕이 군사력만 믿고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기마병을 동원해 속전속
결로 백제를 정복하고자 했다면, 미국이 후세인을 제거하듯이 백제왕을 제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방 호족들이 보유하고 있는 백제 저변의 힘까지 모두 분
쇄시킬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 승산이 불확실한 백제와의 전쟁에 빠져들면
중국이나 북방 돌궐족의 침략, 나제동맹을 맺은 신라의 개입 등으로 고구려 자
체가 위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광개토대왕은 뛰어난 전략가였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야 군사력
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상대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인정할만한 통치이론
과 고도의 정치력이 있어야 함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광개토대왕은 백제와
신라를 정복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이익을 취하는, 즉 고구려의 내실을 기하는 데
주력했다.
실제 역사학자들이 밝히는, 광개토대왕에 대한 기록을 보더라도 그가 단순히
영토를 넓히고자 전쟁을 했다기보다는 내정의 일환으로서 고구려의 내실을 보
다 탄탄히 다지고자 전쟁이라는 수단을 썼다고 한다. 따라서 광개토대왕이 삼국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은 결국 고구려의 힘과 논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결론
이 나온다. 삼국통일을 하려고 해도 전쟁 수행과 관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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