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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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의 신학은 예수가 존재했다는 전제만 있으면
되는 것이며, 부활하신 예수가 그리스도, 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도적 복음(케뤼그마)
이 중요한 것이지, 역사적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연구하여 그러한 사도적 복음을 뒷받침하
려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트만은 바울의 칭의의 복음, 즉 율법의 행위 없이 은혜와 믿음으로만
의인이라 칭함 받음의 복음은 놀랍게도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과 일치한다고 말했습니
다. 예수는 한편으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율법주의를 비판하며, 다른 한편으로 죄인
들이 자신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믿음으로 응할 때 율법의 행위 없이도 하나님의 백성
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할 것임을 약속하고 그들과 먹고 마시는 잔치를 나누
었습니다. 이렇듯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도 하나님의 전적인 용서의 은혜에 의한 구원을
약속하고, 믿음으로 그것을 덕(德) 입음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불트만은 바울의 칭의론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과 놀랍게 일치한다고 강
조했습니다. 바울이 예수의 가르침을 전혀 몰랐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바울의 칭의
의 복음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과 일치한다는 것은 대단히 역설적인 주장입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약학자들이 불트만의 견해에 동의하였고, 1960년대에 에버하르트
융엘(Eberhard Jüngel)은 자신의 “바울과 예수” 라는 책에서 불트만의 논지를 발전시키기
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바울의 칭의의 복음이 불트만과 융엘이 생각했던 식의 단순한 차원을
넘어 훨씬 더 깊은 차원에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에 상응한다는 것을 살펴보려고 합
니다. 정확히 말하면 바울의 칭의의 복음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인 표현’
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논증할 명제입니다. 바꿔 말하면 바울의 칭의론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틀로 이해해야 왜곡함 없이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개신교 전통에서는 바울의 칭의의 복음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과 무관하게
해석하다 보니 칭의의 의미를 편향적으로, 또는 왜곡해서 이해했습니다. 그 결과 칭의론은
의인으로서의 삶이 없으면서도 의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교리, 심지어 의인
으로서의 삶을 방해하는 교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개신교인들은 믿음을
윤리와 분리해서 이해하고, 윤리는 없어도 믿음만 있으면 자신들이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
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비극의 가장
근본 원인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칭의의 복음을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
의 구원론적 표현으로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의 복음
(롬 1:2~4; 10:9~10; 고전 15:23~28; 골 1:13~14)
1) 바울이 인용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복음(롬 1:3~4)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인데, 그분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
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을 행사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
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