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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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해서 가장 예리하게 표현된 전통적인 루터식 칭의론, 즉 인간론적 관점 위주이며, 법정
            적 이해에 치중하며, 개인주의적이고, 의인의 지위를 부여하는 은혜의 ‘선물’성에만 집착하
            는 칭의론에 대항하여 전개했는데, 그 저변에는 전통적인 칭의론이 그러한 특성들로 인하
            여 결국 윤리를 등한시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는 것에 대한 반발도 작용한 것
            입니다. 그래서 케제만(Käsemann)은 창조주 하나님의 나라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 우주
            적 주권 행사와 창조의 회복의 관점 위주로 칭의론을 이해하기를 주장하고, 칭의된 자들(
            곧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회복된 자들,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된 자들)에게 주어진 구
            원의 ‘선물’과 그들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순종’(nova oboedentia)을 함께 강조하는 칭의론
            을 전개한 것입니다.
            제가 케제만(Käsemann)의 어려운 논문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설명했는데, 그가 그 논문을
            통해 칭의론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바를 사실 바울은 골로새서 1:13~14에서 한마디로 간
            명하게 표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
            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참조. 롬
            3:24~25). 여기 ‘흑암의 권세’가 무엇입니까? 사탄의 나라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의 사랑
            의 아들의 나라’라는 말은 또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으로 높임 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통치권을 ‘상속’(위임)받아 대행하는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와 같이 ‘사탄의 죄와 죽음의 통치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심’입니다. 바울은 그것이 ‘속량’이요 ‘죄 사함’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곧 사탄의 죄와 죽
            음의 통치에서 해방되는 것이요, 사탄의 통치에 순종하며 산 죄를 용서받는 것입니다. 이 ‘
            죄 사함’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이 ‘칭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탄의 나라
            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심이 곧 ‘칭의’라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칭의’
            는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이전되는 것입니다.
            칭의론을 이렇게 이해하면, 우리는 바울의 ‘복음’ 선포의 구조를 잘 이해하게 됩니다. 가령,
            로마서 1~8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그것을 믿음으로 덕 입어 의인 되기’를
            서술형(indicative)으로 진술함으로써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러고는 이어서 12~15장에서 ‘
            그 복음이 내포하는 의로운 삶에 대한 요구’를 명령형(imperative)으로 가르칩니다. ‘칭의’
            를 창조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됨, 즉 하나님의 나라로 이전됨이라고 이해하면
            구원의 사건과 윤리적 삶의 불가분의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참조. 롬 12:1~2; 8:9;
            고전 5:7; 6:9~11; 10:12; 갈 5:16; 골 2:20~3:17). 바울의 윤리적 요구는 의인 된 자들(곧 하
            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고 그와의 올바른 관계, 즉 그의 나라 또는 그의 통치 아래로 회
            복된 자들)은 계속 그 관계(하나님의 나라, 통치) 속에 ‘서 있어야’ 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통치에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 ‘의로운 삶’을 살
            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삶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진정 (은혜로, 믿음으로) ‘의인 된’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바울 서신들에 항상 첨부된 ‘윤리’장들입니
            다.


            칭의를 순전히 법정적 범주로만 이해하면, “칭의론은 윤리를 낳지 못한다”라는 슈바이처
            (A. Schweitzer) 등의 비판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관계적 의미, ‘하나님 나라로의 이전’
            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 그 비판은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슈바이처(Schweitzer) 등은 법정적 범주로만 이해한 전통적인 칭의론에 대해 그런 비판을
            제기했는데, 20세기 후반 이후로 보다 진전된 성경 연구에 따라 칭의론을 보다 포괄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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