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월간사진 2017년 8월호 Monthly Photography Aug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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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3_최종_월간사진  2017-07-20  오후 7:52  페이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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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신칠현, <자화상>, 1929
               02 주명덕, <섞여진 이름들>, 1960년대
               03 육명심, <경상북도 안동_ 백민>, 1983
               04 <새농민>, 1968년 10월호 표지(홍세미). 사진아카이브연구소 소장. 이경민 기획전시(2017.8.21~9.12, 스페이스22) 제공












               합성사진, 자연주의 사진, 인상주의 사진, 회화 테마를 모방한 사진 등 회화주의 사진도        이름들>과 이름 없이 살아온 민초들을 담은 육명심의 <백민>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등장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촬영해 특수인화 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        흥미로운 건 광고와 잡지 표지 사진이다. 한국전쟁 이후 스스로 상품을 제작할 수 있는 능
               중심에는 신낙균이 있었다. 일본 도쿄사진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는 특수 인화법을 소개           력을 갖추게 된 우리나라에선 광고와 잡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소비가 미덕이 되는 시
               하면서 예술사진운동을 전개했다. 특수 인화법을 사용하면 밋밋한 포즈와 단조로운 조           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여성 초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 인상적이다. 비록 홍보 목
               명 같은 스트레이트 사진의 결점도 멋스럽게 보완할 수 있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적이 강했고 정형화된 여성상을 제시하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였을 것이
               예술사진의 유행은 사진을 취미로 하는 새로운 계층을 탄생시켰다. 바로 아마추어 사진          라고 추측해본다. 많은 잡지가 여성 연예인을 모델로 채택했다. 박정희 정권의 농촌근대
               가다. 이들은 사진으로 돈을 버는 사진관 사진사와는 달리, 사진을 취미로 하는 애호가였        화 정책을 선전하는 목적으로 제작된 <새농민> 속 여성 초상은 대중성 확보를 위한 미끼
               다. 그들로 인해 예술사진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사진작업에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고,         성격이 짙었고,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의 <향장>은 자사 화장품 판매를 촉진하겠
               파격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기틀을 마련한 건 정해창이었다. 한국인 최초로 사진 개        다는 취지가 강했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초상을 담은 사진이 정부와 기업의 ‘먹고사
               인전을 개최한 인물이기도 한 그는 한국사진이 독창적인 미의식을 갖고 예술사진으로 나          는 리얼리즘’에 근간을 뒀던 셈이다.
               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의 초상사진은 기존의 정형화된
               사진과 달리 과감했다. ‘몸’, ‘부채와 여인’, ‘그네와 여인’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개념 초상 혹은 하이브리드 초상
                                                                       1980년대 들어 국내 사진은 리얼리즘 형식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비록 이때의
               리얼리즘 그리고 얼굴                                             한국사진이 모더니즘을 수용하지 못한 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 계보가 물 흐르듯
               1940~1970년대는 우리나라 사진이 회화주의(살롱사진)에서 리얼리즘 계열로 전환되         이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지만, 어쨌든 이 시기의 한국사진은 현대사진 조류에 합류
               는 시기다. 결정적인 사건은 6.25 전쟁이다. 전쟁을 겪은 사진가들이 ‘사진가란 자신이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변곡점으로 1985년 출간된 홍순태의 <현대사진의 조류>와, 같은
               살고 있는 현실과 역사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사진에 현실을 적        해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구본창을 꼽을 수 있다. <현대사진의 조류>는 그 당시 해외 현대
               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당시엔 회화적인 것보다 기록성을 강조하는 것이 곧 예술          사진의 경향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고, 구본창의 사진을 통해선 해외 트렌드를 간접
               이었다. 리얼리즘을 토대로 다양한 사진 장르가 가지를 쳤다. 그래서일까. 이 시기에는 우       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결정타는 구본창이 기획한 <사진, 새 시좌>전(1988)이었다. 현
               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것과 비슷한 초상사진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오로지 인물에 집중          대사진 경향을 급급하게 보여준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사진은 눈
               했던 사진가도 찾기 힘들다. 사진에 인물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전형적’이라        에 띄게 달라졌다. 사진가의 독창적인 시각이 중시되는 작가주의 사진이 등장한 것이다.
               기보다 다큐멘터리에서 파생됐다는 느낌이 강하다. 주제 역시 해방, 분단, 한국전쟁,          ‘아마추어 사진’과 ‘스트레이트 포토’에서 ‘메이킹 포토’로 전환됐고, 사진에 개인의 감정
               4·19혁명, 5·16 군사정변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주를 이룬다. 임응식, 이형록, 정범태    과 생각이 담겼다. 사회적 이슈와 담론도 스며들었다. 사진이 개념미술 맥락 안으로 들어
               등의 사진을 비롯해 한국전쟁의 참담한 현실 중 하나인 혼혈아 문제를 다룬 주명덕의 <섞여진      온 것이다. 초상사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상의 본질적 의미보다는 초상을 통해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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