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인천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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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시피 했다. 그 결과 유엔군이 입은 손실은 전사 21명에 실종 1명,
                                       미 해병대 제1사단의 제5연대는 경인국도의 북쪽에서 서울로,
                                          제1연대는 남쪽에서 서울로 진격, 제7연대는 예비 병력으로 당분간
                            인천은 다음 날 아침에 탈환하였으며, 북한군의 이렇다 할 반격은
                     , 서울 수복                      내륙으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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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7일   9월  시작했으며, 이날부터 18일까지 산발적인 전투를 치러 영등포까지  북한은 뒤늦게 인천이 주공격 지역이라는 것을 깨닫고, 경인가도에  엄청난 지뢰를 부설하는 한편, 북한군 9사단 87연대가 필사적으로  영등포를 방어하는 사이에 서울로 동원할 수 있는 2선급 부대를 모두  동원했다. 중국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낙동강 전선의 주요 정예부대  중 극히 일부만 서울로 동원했기 때문에 병력에서나 장비에서나  9월 26일 남산을 점령한 미 육군 32연대는 이후 흥인지문, 낙산  일대를 점령했고 한국 육군 제17연대는 동쪽의 용마산 고지 일대  서울 시가지 탈환 작전은 미해병 제1사단 제1연대가 삼각지에서  서울역-서울시청  방면을,  한국  해병  제1,  2연대는  서울역에서  남대문시장-한국은행














         인천상륙작전    # 12.  인천상륙작전의 완성판  부상 174명에 불과했다.  인천 수비에 전념하기로 역할 분담을 했다.   제1연대는   제5연대와   진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상륙군에 대항하기가 어려웠다.  북한군 기지를 공격했다.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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