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3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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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3일, 민전은 미소 공동위원회 촉진 시민대회를 주최했다. 그 자리에 조
봉암의 <전향성명서>가 뿌려졌다. 16)
“3천만 민중이 원치 않는 공산당 책략에 반대,
인천 시민대회에서 조봉암 씨 성명”
(『한성일보」, 1946년 6월 26일 1면).
【인천지국특전】 조선이 일제의 ○반으로부터 해방되던 8·15 당일 인천 경
동 애관에서 인천 시내 각계의 인사를 초청하여 인천치안부장회를 조직
하는데 선봉으로 나섰고 이어서 건준급 인민공화국의 산하에서 인천시위
원회를 조직할 때의 주역으로 좌익계열의 이론가로서 인천에서 정치적
지도자의 입장에 있던 조봉암 씨는 수일 전 조선공산당 정책에 대한 예리
한 비판을 가하여 『박헌영 동무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썼고 5월 15일에
는 자기의 노력으로 결성된 민전 인천시 인민위원장을 사임하는 등 그의
신변에 적지 않은 동요를 보여와 세인의 주목을 끌고 있던 바 지난 23일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열렸던 미소공위 재개촉진 인천시민대회에서 조봉
암 씨는 별항과 같은 중대 성명서를 산포하여 인천 사상계는 물론 공산계
열에 커다란 충격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조봉암 씨)
16) 김삼웅(2019: 227), 정태영·오유석·권태복 엮음(1권, 1999: 39)에서는 이를 6월 22일로 쓰고 있
다. 이는 「동아일보」, 1946년 6월 26일자 1면, "비공산정부를 세우자 인천 조봉암 씨 성명 배포"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자료들은 미소공동위원회 촉진 시민대회를 6월 23일로 밝히고 있다(「동아일
보」, 1946년 6월 25일 2면, "조봉암 씨 석방 인천 노조위원장 피감"; 「한성일보」, 1946년 6월 26일 1면,
"3천만 민중이 원치 않는 공산당 책략에 반대, 인천시민대회에서 조봉암 씨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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