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1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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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을 한 자들이 동지를 속이고 계급을 속이고 뻔뻔히 군중 면전에 나타나
           서 꺼떡대는 것은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현상이며 우리 당을 파괴하는 결

           과가 될 것이오. 나 자신부터 소위 자기비판을 했다 해서 그 죄과들이 일

           시에 없어지는 것이 아닐 줄 아오. 벌은 벌대로 받아야 되오. 새로 볼셰비

           키에 입문하고 새로 일을 시작해야 될 줄 아오. 너무 장황해졌소. 바쁘실

           텐데 죄송하오. 이상 몇 가지는 참고하시고 내 개인 문제는 시급히 처벌
           해 주시오. 당내에서나 당외에서나 적당한 방법을 확실히 표시해 주시오.

           그래야 나도 마음 편히 일할 수 있고 당내 당외의 영향도 좋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것만 쓰고 길이 동무의 건강 건투를 빌어 마지않소.




             *출처 : 「동아일보」, 1946년 5월 7일 2면, 8일 2면; 『한성일보』, 1946년 5월 7
           일 1면, 8일 2면, 9일 2면




               ■  6월 11일, 미군정 법령 제72호 제8항 위반 혐의로 인천 CIC에 연행됐다

                                             14)
                 가 22일 <전향성명서>를 쓰고 풀려났다.  해방 후 조선공산당과 결별하기
                 까지 박헌영과 조선공산당에 대한 입장을 조봉암은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인천에서 내가 민전 의장일 뿐 아니라 공산당 등 모든 좌익운동의 지도

           자로 지내는 중에도 조선공산당 지도자인 박헌영들의 여러 가지 불합리



           14) 평전 저자 이원규는 이때 조봉암이 전향을 결심하고 귀가했다고 했다(이원규, 2009: 385~387). 그
           러나 조봉암과 함께 진보당 활동을 했던 죽산 조봉암 전집(전6권)을 출간한 정태영은 이것은 전향이 아니
           라 지양이라고 했다(정태영, 2006: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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