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1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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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과 같이 강문석은 극좌 운동에 광분 중 마침내 쇼와5년 8월 상순경 오
사카시 히가시나리구 센 고무공장 조선인 노동자 2명이 해고된 것이 발
단이 되어 소위 전투적 분자 등은 공장주의 횡포를 분개하여 만족할 때까
지 항쟁하여 해고, 해고반대 등을 전취하기 위하여 스트라이크를 감행하
려고 노력하여 강문석은 그 조직 확대책에 대하여 전협 일본화학 오사카
지부 간부로 조몽구, 김문준 등과 협의한 결과, 센 고무 공장의 스트라이
크를 선동하고 히가시나리구 전 공장의 스트라이크에 미쳐 임금 취하, 해
고 반대를 진취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일결하고 스트라이크 조직에 전력
을 경주하게 되었지만 8월 10일경 저녁 오사카시 히가시나리구 고코바
시 부근 조선인 모(某) 방에서 센 공장 직공 10여 명을 소집하여 각자 불
평불만을 듣고 그날 밤 강문석, 김문준 두 사람은 밤을 새워 「우리의 요구
는 이와 같다」라는 제목으로 요구 조건을 내걸고 등사 인쇄하여 약 100
매를 인쇄하고 다음날 아침 조몽구를 통하여 센 고무 공장에 살포하기 하
여 노동자의 기분은 점차 첨예화함으로 이미 정해진 요구 조건을 밀어 부
쳐 노동자를 궐기시켜 마침내 스트라이크를 감행하게되어 그 선동 강화
를 위해 「센의 형제」라는 제목의 투쟁 신문을 센 공장 종업원 유지단(有志
團)의 이름으로 강문석, 김문준이 담당하여 등판 인쇄를 계속하여 3회에
걸쳐 고무 공 노동자에게 살포하여 노동자의 태도는 계속해서 첨예화하
여 강문석은 조몽구, 김문준 등과 협의하여, 스트라이크 감행 전 종업원
대회를 개최하기로 하여 그 장소를 8월 중순 오사카부 오사카역(小坂驛)
부근 신사 경내로 정하고 준비를 진행하고 있어 여러 가지 준비가 다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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