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전시가이드 2023년 03월 이북
P. 44
안현정의 전시포커스
Leitzkultur 3, 165x100cm, 캔버스에 오일, 2021
노동을 보는 눈, 이것은 캐비닛(cabinet)이 아니다. 은 작가가 왜 가짜 캐비닛을 그렸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캐비
닛을 바탕삼은 그림이 캐비닛이 아니라면, 작가는 작품 안에 무엇을 보여주
스테판 비셰네더 려 한 것일까? 친숙한 이미지 앞에선 관람객의 당황스러움이 ‘이미지의 배반
(Stefan bircheneder) (Betrayal of cabinet image)’을 통해 ‘사유’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단어
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관객의 당혹스러움은 ‘캐비닛을 캐비닛의 역할로만
규정하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가는 캐비닛의 열고 닫는 구조를
글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통해 사물을 보는 다양한 상상의 세계를 읽으라고 속삭인다. 『어린왕자(The
little Prince)』의 첫 장에 등장하는 ‘모자 형상’처럼, 우리는 실제 ‘캐비닛’과 스
테판의 작품 사이에서 다양한 상상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 여기던
감각적인 도시 이미지 사이로, 텅빈 공간이 자리한다. 작가는 예술과 노동이 행위와 현상에 대해 ‘정말 그럴까?’ 하는 의문 부호를 남겨놓는 방식, 이미지의
라는 서로 다른 척도를 그린다. 텅빈 공간 안에 놓여진 텅빈 캐비닛, 그 안에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작가의 탁월함, 이것이 스테판
는 가치의 문제, 자본의 문제, 창조성의 문제, 보상의 문제 등 상충된 입장이 작가가 미술로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이다.
존재한다. 작가는 인물이 배제된 노동 현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것인
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한국에 최초로 소개되는 스테판 작가는 ‘예술과 노동’ 물신주의, 불평등한 노동을 공유한 세상
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을 ‘유머러스한 아이러니’로 녹여냄으로써. 예술
과 노동의 접점 및 한계, 노동으로서의 예술 등을 다 각도로 바라보는 좋은 작가는 허구 속에서 진실을 찾고, 진실 속에서 자유를 요청한다. 닫고 열리는
기회를 제공한다. 캐비닛은 관람객에게 흥미를 일깨우고, 다양한 아이디어로의 확장을 불러일
으킨다. 환경과 사회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통해 현실을 새롭게 보는
캐비닛의 기능을 갖지 않는 캐비닛,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작의 세계를 여는 것이다. 캐비닛이 대상이라면, 이를 둘러싼 환경을 보자.
텅빈 사무실, 버려진 공장을 그린 작품들 속에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곳
스테판 작가는 의미를 거세한 대상에 ‘자율성’을 부여한다. 고정관념에 돌을 은 창고일 수도, 라커룸일 수도 있다. 혹은 산업사회가 만든 그 어떤 공간일 수
던지는 시도는 ‘예술이 다양한 가치를 갖는다’는 가능성을 남긴다. 그럼에도 도 있다. 작가가 텅빈 공간을 그린 이유는 노동과 연결된 자본, 물신화된 세상
캔버스에 그려진 것은 명확한 사실주의를 좇는다. 사전적 정의에서 캐비닛은 속에서 인간다움을 찾으라는 메시지 때문이 아닐가. 작가는 지배를 위한 인간
“귀중품이나 사무용품, 서류 등을 넣어 보관하게 만들어 놓은 장”을 말한다. 의 노동을 반전시켜, 노동의 흔적을 담은 캐비닛과 이를 둘러싼 플랫폼에 집
명확하게 무언가를 보관하는 역할을 갖는 ‘개폐(開閉; 문따위를 열고 닫음) 구 중한다. 인간이 배제된 채 그려진 사물들 사이에서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노
조’를 갖는 것이다. 마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 동하는 현실을 사유하게 된다.
라는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언변처럼, 캔버스 앞에 선 관람객
42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