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전시가이드 2021년 03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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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den blue, 100x244cm, on cotton, 2020


            산중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뭇가지에 새가 앉아 있다. 망중한을 즐기면서도 곧        닌 윤회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여기는 것. 내 그림도 이
            날아오를 듯하다. 고요함을 가르며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날아간걸까? 그렇        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게 느껴졌다. 쓰기 어렵다는 파랑으로 무한한 색감을 표현하는 김선형 작가
            (경인교육대학교 교수)의 작품 이야기이다. 작가의 작품평을 쓴 김백균, 서성      공교육으로서 학교미술교육에서는 전통미술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현장에서
            록, 고충환, 조병완, 김상철, 박나리의 글 모두 훌륭하지만, 2021년 초 작가에   는 아직도 한국화, 동양화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영역을 넘나들며 작업하는
            대한 점검은 내 차지이다. 작가를 만나 인터뷰하였다.                   작가로서 학교미술교육의 발전을 위하여 적절한 용어를 제안한다면 무엇인
                                                            가?
            가든 블루(Garden Blue)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서양은 painting으로 용어가 간단하다. 우리도 고유의 용어를 찾는 게 중요하
            ‘가든 블루’ 이전은 ‘마인드 가든’(Mind Garden)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  다. ‘그림’을 추천한다. 한국 속의 현대 영향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그림’
            화된 산화철의 색을 좋아하던 시절 겨울 연못에서 연잎이 지고 연대가 예각        이라 칭할 수 있다. 조각, 불상, 탑 등의 입체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림
            으로 과격하게 꺾이는 그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산화철의 변화와 같은 매력을        만듦’이라는 용어도 가능하다. 용어를 만드는 데에는 기본이 중요하며 다른 해
            느꼈다. 시간이 지나 시들어 죽는 무상함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름답       결책은 없다. 지금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우리만의 것에 집중해야
            다. 이 소재는 그대로 ‘가든 블루’에도 이어졌다. 사찰을 즐겨 다니는데, 일주문   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전에 이 땅에는 누가 있었는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을 통과하여 대웅전까지 가는 그 길 위에서 많은 암시를 받는다. 특별히 화엄      서 있는가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 우리의 것이 중요하므로 이를 위한 아카이
            사(華嚴寺)에 간 어느날 불전사물(佛殿四物)의 법고가 울리는 가운데 중첩된       브도 구축하고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주최가 되어 캠페인이나 문화 운동
            딥 울트라마린의 산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새를 보았다. 법고의 파동, 푸른 산,     등 우리의 것을 찾기 위한 전략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새. 이후 파랑과 새가 작업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붉은색을 좋아했
            는데 파랑으로 전환되었다. 이때가 2007년경으로, ‘가든 블루’의 시작이다. 네   교육과 작업을 어떻게 병행하고 있는가?
            이비, 프러시안 블루, 프탈로사이아닌 블루 등을 썼지만, 현재는 울트라마린       우리 모두는 각자가 지닌 능력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학교와 작업실이 멀
            만 쓴다. 한지와 천을 반반 쓰는데, 한지는 크기의 제약이 있다. 천을 쓸 때에    리 떨어져 있지만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작가로서의 삶도 교육자로서의 삶도
            는 제소에 호분을 섞어 번지는 느낌이 나게 한다.                     모두 중요하게 생각한다. 교육은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것인데, 옛날에도 좋
                                                            은 학자는 모두 좋은 선생이었다. 교육자로서 세상을 경험하고 배우는 것도
            현재 관심 두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는가?               많다. 그러나 작업실로 향할 때는 전업작가로 전환된다. 그 상황에 충실히 임
            현재는 ‘분’(盆)이다. 자연 그대로는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여주      하는 것.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고 얼마만큼 서 있을 수 있는가를 아
            는, 왜곡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것조차 상관없는, 협소한 공간이지만 자신만        는 것이 중요하다.
            의 방식으로 자연을 인간의 삶 속으로 끌어들여 구성할 수 있는 것이 분이다.
            한·중·일 간 분에 대한 접근이 다른데, 서양과 달리 자연에 내가 동화되는 것     인터뷰를 하면서 매 순간 충실히 임하는 작가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 공유한 것
            이 동양의 사상이다. 동양인이 분을 좋아하는 것은 자연에 내가 동화될 수 있      이 즐거웠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멀티로 하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하나하
            고 이를 집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과 인공의 구별을 확      나 그 상황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는 순간
            실히 갖고 있는데, 자연에 대한 신앙으로서 그 출발이 분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다. 작가의 작업을 보면 극단적인 평면성으로 때로는 그 속에서 길을 잃을
            가든 블루’ 때부터 분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내 작업에는 두개의 철칙     것만 같은 무한한 거리감과 깊은 공간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상반된 극단
            이 있다. 첫째, 일광이 있을 때 그리고 해지면 그리지 않는 것. 둘째, 스케치를   성은 작가의 색에서도 나타난다. 강렬한 딥 울트라마린에서 벗어나 앞으로 어
            안하는 것. 큰 작업을 할 때에도 스케치를 안하는데, 느낌이 모두 사라지기 때     떻게 변할지 작가도 예측불가하지만 엷어져야겠다는 생각으로 보다 담(淡)하
            문이다. 서양과 달리 동양에서는 마음에 담아 순간에 그리는 것을 중요시하        게 나아가고 있다고 하니, 진한 느낌에서 점점 엷어져서 화면에서 사라져버릴
            였다. 서화동원(書畵同源), 의재필선(意在筆先)이다. 지금도 제자들에게 글씨      것만 같은 현재의 흔적들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변화무쌍한 듯하지만 있는
            를 쓰라고 권한다. 좋은 글씨에는 호흡간의 기운과 미감이 모두 들어 있다. 24    그대로의 왜곡되지 않은 자연을 우리 앞에 선사하는 모습에서, 그리고 앞으로
            세부터 그림을 시작해서 30년여년이 지나 55세가 되었을 때 이제는 정말 그      의 거대한 계획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하는 작가를 나는 믿
            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시들고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죽음이 아     는다. 그는 지금까지 그런 삶을 변함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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