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전시가이드 2020년 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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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권 컬럼
한국 현대 민화
글 : 김용권(겸재정선미술관 관장)
재현 민화
재현representation 민화는 대부분 모(摹)의 방식인 밑그림에 의해 제작된다.
즉 재현 민화는 원본위에 투명한 종이를 덮어 한 장씩 원본대로 모사한 후 그
것을 바탕삼아 종이나 비단에 작품을 완성하는 제작 방식이다. 이른바 재현
민화는 전통 민화의 관화 제작처럼 철저하게 ‘밑그림(초본, 하도)’에 의존하면
서 체계적, 인습적으로 제작한 그림을 말한다. 오늘날의 재현 민화 역시 과거
의 관화 제작처럼 ‘밑그림’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단순한 복
사의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재현 민화의 주된 초점은, 단순
한 복사의 의미를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원본에 담긴 시대성과 작가정신 등의
보이지 않는 조건들까지 다루어야 한다. 이른바 오늘날의 재현 민화는 원작의
표피에 집중되어야 하고 그것을 똑같이 그려내는 것은 필연적 단계이지만, 그
너머의 우리 선조들의 삶, 얼, 멋을 정확하게 읽어 내는 하나의 시각적 정보 자
료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재현 민화는 조선 시대의 화원들
이 오늘날에 다시 살아나 그려낸 것처럼, 조형적, 재료적, 내용적 연구와 함께
몇 년 몇 달을 공들여 정성스럽게 그려낸 것이어야 한다.
창작 민화
창작creation 민화란 새로운 민화, 처음으로 만들어진 민화를 말한다. 하지만
창작 민화 역시 전통 민화의 후예로서 ‘행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즉 창작 민화는 오늘날의 우리가 고민하는 삶 즉, 현
대인들의 걱정과 근심을 치유, 마음의 안정과 편안함을 찾는 그림으로 정의된
다. 계속해서 창작 민화는 21세기를 배경으로 ‘행복’을 위해 탄생되어야 한다.
삶에 활력을 주는 힐링의 그림, 희망의 그림, 행복의 그림으로 사용될 수 있어
야 비로소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즉 창작 민화는 동시대에 어울리는 자기만
의 조형 언어로, 동시대에 요구되는 ‘행복의 염원’을 담아내어야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창작 민화는 우리 사회를 각종 갈등으로 몰아
넣는 물신숭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염원한다든가 타자에 대한 증오가 사랑
으로 바뀔 수 있도록 하는 바람 같은 것들이 담겨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창작 민화는, 형식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톡톡 튀는 독특
한 스타일을 동원하여 현실 공간에 어울려야 하며, 내용은 현실 생활에 요구
되는 소망, 믿음이 담겨져야 한다. 물론 오늘날의 창작 민화는 과거의 민화에
요구되었던 보편적 가치와 의미는 그대로 유효해야 한다. 하지만 형태적인 측
면과 화폭에 담아내는 소망은 시대정신에 따라 계속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끝으로 오늘날은 미술의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퓨전화 시대가 되었다. 그래
서 공예냐 순수미술이냐를 따지거나 민화의 범위를 고집하는 것은 무의미할
토끼와 잉어도. 지본수묵. 79x41cm. 조선민화박물관 소장
수 있다. 이른바 오늘날은 공예와 순수 회화의 경계를 충분히 허물어뜨릴 수
있으며, 민화 작가들이 순수 회화를 지향하거나 반대로 순수미술가들이 민화
작가들처럼 활동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럼에도 민화 작가
최근 우리 민화 분야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분명하게 재현과 창작이 구분되 와 순수 회화 작가는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창작 민화 작가들은
어 때로는 병렬적, 때로는 종속적으로 의존하면서 빠르게 진화해 나가고 있 useful 아트로서 fine 아트의 역할과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순수 회화 작
다. 이른바 이 시대 민화 분야의 결정적 흐름은, 재현 민화 작가들과 창작 민화 가들은 창의적 미학 바탕아래 개인적 취향의 조형 기호나 개인적 메시지를 담
작가들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성을 확인하고, 연구, 전시, 문화상품 개발 는 활동이다. 반면 창작 민화 작가들은 우리들의 공동 목표인 ‘행복’과 ‘장수’를
등을 위해 함께 고민, 소통, 화합하면서 나아가고 있다. 이렇게 오늘날의 우리 담는 활동으로 순수 미술과 크게 다르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창작 민화 방향
민화 분야는 ‘민화’라는 명칭하에 재현과 창작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조화 은 ‘공예적 회화’여야 한다. 즉 오늘날의 창작 민화는 전통 민화가 추구했던 것
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에 따라 우리 민화 분야는 한층 생기 있어 졌 처럼 생활성, 주술성, 장식성이 주가 되면서도 그 벽을 넘어 다양성이 느껴지
고 전체적인 위상도 크게 상승되었다. 는 회화성까지 확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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