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전시가이드 2020년 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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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나 도덕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폐쇄성을 가진 민족이 가지는 일반적 이 비유에서 만들어진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Good Samaritan Law)'이라고
인 현상입니다. 실제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 또한 이민족과의 활발한 교 있습니다. 이 법은 미국이나 유럽의 많은 나라들, 그리고 일본에서 시행되고
류 없이 오랜 세월 살아오다 보니 외국인에 대한 까닭 모를 멸시가 있는 편이 있는 법으로 ‘자신이 특별한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임에도 타인의 응급상황이
고, 특히 그것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에게 더 극심합니다. 집단적 멸 나 위험을 외면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응
시현상은 그 대상이 없을 경우에는 내부에서 찾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만 하 급의료의 관한 법률’ 중 일부에 응급처치 중 과실에 대해서는 민형사상의 책
더라도 호남지역에 대한 지역차별현상, 조선시대에는 평안도 지역에 대한 차 임을 감경 혹은 면제한다는 조항을 두어 보다 적극적인 위난구조를 실제로 의
별 등이 바로 그 예이고, 중국은 지금도 하남성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심하게 무화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찬반입장이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고 아직은 제대
남아 있습니다. 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응급을 요하는 환자에게 의료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반 사람의 서투른 응급처치로 인해 더 불행한 결과가 초래되는
예수의 비유에서 신성한 랍비가 되었던, 율법에 정통한 레위인이 되었건, 아니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일일지라도 어떤 결과
면 천하다고 여기는 사마리아인이던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한 행위 가 될지는 통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를 중요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랍비나 레위인은 율법에 의해
피를 만지면 안됩니다. 아마도 그래서 그들은 강도에게 상처 입은 환자를 외면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봇짐 내놓으라고 한다’ 라
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 앞에서 율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 는 사고가 지배적이고, 실제로도 선의에 의한 행동이 과도한 책임을 가져 오는
의 존엄성이고 이것을 도와주는 행동이 더 귀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건강은 구성원의 철학적 깊이에서 비롯
파리 프티팔레에 있는 아이미 모로가 그린 '착한 사마리아인'이라는 그림입니 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주는 현대적 의미를 살펴 보고 이를 통해
다. 도둑에게 모든것을 빼앗기고 벗겨진 상태로 의식을 잃은 한 유대인을 힘 행동의 양식과 방향을 결정할 때 보다 성숙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음을
겹게 노새에 앉혀 사마리아인은 이동하고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는 학자에 따라, 시대에 따라, 그리고 말하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아주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이 비유를 해석하면서 강도에게 상처 받은 사람을 낙원
에서 쫓겨난 아담으로 보고,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정에 있던 일이
며, 여기 나오는 사마리아인은 우리를 인도하는 예수를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코너는 칼럼니스트의 의도하는 바를 존중하며 경어체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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